[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시]끈끈한 가족 - 최윤정

2026-01-02     차형석 기자
일러스트=김윤자

끈끈이에 몇 마리 파리가 붙어 있어요 저건 주검도 오점일 거예요 엄마도 끈끈이에 자주 붙었죠 한 발을 떼면 또 다른 발이 들러붙었어요 검버섯 얼룩덜룩한 팔다리를 가난에서 겨우 뜯어내고 나면 골방의 수챗구멍에서 아버지가 기어 나와요 놀라서 뜨거운 물을 끼얹어요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죠 다리가 너무 많거나 너무 긴 것들은 슬퍼요 아무 데나 자꾸 매달리고 싶어 하죠 엄마는 내 등에 올라타기도 해요 깍지 낀 손가락을 떼어낼 때마다 왜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죠? 뒷덜미가 잡힌 것처럼 목이 움츠러들어요

핏줄을 선택할 수 없다는 건 벌칙 같아요 기도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죠 두 귀가 왼쪽으로 비틀어진 개는 앞발을 모으고 누워 하루 종일 잠만 자고요 나는 귀퉁이가 해진 아버지를 모아 새로 아버지를 만들죠 반듯해진 그는 이력서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너덜너덜해지네요 속옷을 또 뒤집어 입었네요 킥킥, 당신이 몰래 꽃씨를 뿌리고 다니는 건 비밀로 할게요 우리 가족도 뭔가 하나쯤은 함께할 수 있잖아요

엄마가 밥통 속 환한 빛을 바닥까지 긁어 담아요 우리는 설익은 십자가들을 골라내어 그릇 옆에 모아두었죠 기도를 열심히 하면 울기도 하잖아요 집구석마다 곰팡이가 단란하게 피어 있는 오늘 밤이 꼭 그런 기분이죠 누군가 밟고 지나간 반지하의 하늘이 창으로 밀려들어요 우리는 각자의 벽에 들러붙어 싹싹 눈이 부신 쪽으로 밤새 빌었어요


■당선소감-최윤정/살아보니 다 때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최윤정

비관적인 시가 많았습니다.

다 써놓고 보면, 내놓을 만한 글이 못되고, 누가 읽으면 비웃을 것 같고, 너무 폭력적이거나 너무 아프거나, 흉잡힐 게 많았습니다.

그런 시들이 창을 내고 빛을 받아들이며 그래도 햇빛 쪽으로, 따뜻한 쪽으로 가고자 애를 쓰게 된 것은 남편 덕분입니다. 내 시 읽는 것을 안 좋아 하지만, 읽으라면 읽고 쓴소리를 해주니 썩 유용한 배우자입니다.

신춘이라는 한 줄의 이력을 얻기 위해서 마음만 애쓰고 몸은 게으름피우다 나이만 먹은 것 같습니다.

더 일찍 정신 차리고 바지런했으면 몇 년은 단축할 수 있었겠다 싶지만, 살아보니 다 때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니 허송세월도 하늘의 뜻이니까 게을렀던 반성은 조금만 하고 많이 기뻐했습니다.

실은 당선 연락의 마지노선이었던 날이 지나고 마음을 접고 있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 하원을 기다리는 도중 당선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가 육중한 몸으로 폴짝폴짝 뛰는 것을 아이는 처음 보았을 겁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사랑하는 네 아이들과 남편,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시가 길을 잃을 때 이정표가 되어준 나비족장 박지웅 시인께도 감사드립니다.
■약력
-2010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제3회 천강문학상 수필 우수상
-2014년 김유정 신인문학상
-제15회 천강문학상 시 대상

■심사평-김사인/생각을 풀고 거두는 솜씨 유려하고 자연스러워

김사인

요컨대 선자는 ‘끈끈한 가족’을 당선작으로 고르기를 피할 수 없었다.

어떤 투고작들도 그 새로움에 있어서나 시적 기량의 자재로움에서 당선자의 성취를 넘지 못했다.

영화 기생충을 연상시키는 가난한 도시 가계의 비참을 가볍고 쿨한 터치로 오히려 더 아프게 새겨내는 당선작은, 놀이인 듯 탐구인 듯 생각과 말을 풀고 거두어가는 솜씨가 이미 신인답지 않게 유려하고 자연스럽다. 다른 두 작품 역시 이에 손색이 없다.

훌륭한 당선작을 얻게 되는 것은 말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만, 그 노련함과 무르익음이 오히려 염려스럽다는 군말을 굳이 덧붙여 두고자 한다. 이미 충분히 노련하여, 더 어떤 열정이 시인 내부에서 동원될 수 있을지, 그리하여 시와 삶의 자기갱신에 나설 수 있을지 저어스러운 바다.

노파심을 불식시킬 겸손한 심기일전이 그에게 있기를, 한국어 시쓰기의 새 길 한 자락이 그에 의해 일으켜 세워지기를 기대하고 응원하려 한다.
■약력
-1981년 동인지 ‘시와 경제’ 창간 동인 참여
-1982년 평론 활동 시작
-시집 ‘밤에 쓰는 편지’ ‘가만희 좋아하는’ 등
-2015년 제7회 임화문학예술상 수상
-2006년 제14회 대산문학상 시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