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시조]바닥 신호등 - 이영미

2026-01-02     차형석 기자
표제·일러스트=박준현
표제·일러스트=박준현

고개 숙인 자존심을 세워주고 싶었어요
섬이 된 스몸비족 헤엄쳐 나오는 길
바닥에 푸른빛 등대무자맥질 도와요

불통과 무관심에 푹 빠진 회색 도시
저 아래 해저에는 삼각파도 들끓는지
몸에 밴 심해의 습성
느닷없이 나타나요

꽉 들어찬 별들로 하늘은 이미 만원
차도와 인도 사이 공제선에 빛을 심어
지상에 더 머물라고수호신을 내보냈죠

멀리서도 알아보고 바퀴마저 숨 고르는
목숨줄 길잡이로 끌어주고 싶었어요
뭍으로 진입한 섬들
그제서야 안심하는,


■당선소감-이영미/메모해두던 습관, 한수가 되고 작품이 되다

이영미

금방 다가올 것 같아도 어느새 달아나고 잠시 얼굴 내밀어 소곤대다 밀어내는, 제게 시조란 물음표 같은 밀당의 연구대상이었습니다. 단아하고 멋스러운 그 성품 안에는 놀랍게도 당차면서도 범접하지 못할 위엄까지 갖추고 있어 여러 해 동안 저는 주위만 도는 히키코모리가 되곤 했지요. 그런데 그런 모습이 측은했는지 황송하게도 그 높은 문이 이렇게 활짝 열려 시조를 향한 저의 종천지모는 계속 이어져도 될 것 같습니다.

잠들기 전 한 구절 떠오르면 기록하고 걷다가도 문득 돌부리에서 캐낸 사유들이 부서질까 멈춰 서서 메모해 두던 습관이 한 수가 되고 작품으로 완성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초심을 발판 삼아 이제 시작이라는 각오로 글쓰기에 정진하겠습니다. 글의 맛을 버무릴 줄 아는 감각도 잊지 말아야겠지요. 더불어 당선작인 ‘바닥 신호등’의 의미 따라 빛과 지표가 되는 시인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제게 이토록 영광스러운 길로 이끌어주신 경상일보 신춘문예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제 시조를 맑은 눈으로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엎드려 절 올립니다. 나태하지 않도록 더 달금질해 나가겠습니다. 힘 실어준 가족들과 특히 방방곡곡 기도처를 찾아다니며 애쓴 남편의 간절한 서원도 여기에 추가합니다.
■약력
-충남 연기 출생
-2022년 지용신인문학상
-2024년 백수문학신인상

■심사평-이종문/손바닥만한 시조 한편에 내장된 거대한 풍경

이종문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열 분의 서른여섯 편이었다. 어렵게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인 만큼 대부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지만, 군계일학의 돌올한 수작은 선뜻 눈에 띄지 않았다. 심사숙고를 거듭한 끝에, ‘살구꽃은 피었건만’, ‘AI시대-포노사피엔스의 여름’, ‘바닥 신호등’ 등 3편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다.
당선작인 ‘바닥 신호등’은 소재에 대한 꼼꼼한 성찰과 남다른 비유, 입체적 구성이 돋보이는 가작이다. 스몸비족을 느닷없이 ‘섬’에다 비유하는 순간, ‘헤엄’, ‘푸른 빛 등대’, ‘무자맥질’, ‘해저’, ‘삼각파도’, ‘심해’ 등 바다 관련 시어들이 연쇄적으로 등장하면서, 바닥 신호등이 설치된 대도시의 횡단보도 일대가 난데없이 온통 바다 이미지로 출렁거린다. 손바닥만 한 시조 한 편 속에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별’과 ‘하늘’과 ‘뭍’까지 포괄하는 거대 풍경이 내장되어 있다는 점에도 방점을 찍었다.
당선을 뜨겁게 축하드리며, 앞으로 우리 시조단에 지각변동을 크게 일으킬 주역으로 당당하게 성장하시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아쉽게도 좋은 기회를 놓치신 분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가락과 현실 인식과 표현의 삼박자를 제대로 갖춘 빼어난 작품으로 다시 한번 도전해 주셨으면 한다.
■약력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등단
-시집 <아버지가 서 계시네>, <내 마음 좀 알아 도고> 등
-유심작품상, 중앙시조대상 등 수상
-현 계명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