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칼럼]“No pain, no gain”
“고통 없이 인간은 진화하지 못한다.” 최근 한 재계 인사의 아들이 군 장교로 임관하며 내건 좌우명이 화제가 됐다.
이 말은 단순한 개인의 좌우명을 넘어, 우리 사회가 고통과 노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문장처럼 들린다.
서양 격언에 “No pain, no gain(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역시 오래전부터 전 세계 운동장과 교실, 직장에서 회자돼 왔다. 땀과 눈물을 흘려야 비로소 성취와 보상이 주어진다는 이 격언은, 빠른 성과를 좇는 현대 사회에서 더 강력한 주문처럼 반복되고 있다.
‘고통’이 미화되는 사회문제는 이 문장이 성찰 없이 소비될 때 생긴다. “고통 없이 인간은 진화하지 못한다”는 말은 어느새 “고통을 즐겨라”는 구호와 결합해, 아파도 참고 견디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압박으로 변질되기 쉽다.
직장과 학교, 가정에서 ‘버티기’는 미덕이 되고, 약함을 드러내는 순간 ‘노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한국은 오랫동안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해 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10대부터 40대까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일 정도다.
인구 10만 명당 29.1명, 하루 평균 40명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경제력은 세계 상위권이지만 삶의 만족도와 행복 지수는 하위권에 머문다.
CNN 등 해외 언론은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나라’로 소개하며 과로와 스트레스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사회, 아파도 티 내지 말라는 침묵의 압력이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성장으로 이어지는 고통의 조건이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고통을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No pain, no gain”이라는 격언의 본래 의미는 무리한 자기 희생이 아니라, 의미 있는 성취를 위해서는 일정한 노력과 불편함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관계를 회복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익숙한 자리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성장의 통증’을 감내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방향과 목적이다. 나를 소모시키는 고통인지, 나와 공동체를 성숙하게 만드는 고통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부당한 구조와 폭력적인 문화가 강요하는 고통을 ‘인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안 되며, 그 고통은 줄이고 바꾸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대상이다. 반면 새벽잠을 줄여 공부하고, 실패의 수치를 감내하며 다시 도전하는 고통은 나와 타인의 삶을 넓히는 성장의 비용일 수도 있다.
‘고통의 미학’에서 ‘돌봄의 윤리’로 이제 우리 사회는 “고통을 즐겨라”는 구호 대신 “고통을 이해하고 돌보라”는 메시지로 나아가야 한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 무너지는 것이라는 오래된 지혜처럼, 몸과 마음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문화가 필요하다.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 힘들다고 털어놓을 수 있는 직장과 학교, 상담과 심리 지원에 쉽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지역사회가 갖춰질 때, 고통은 더 이상 파괴가 아닌 성찰과 연대의 출발점이 된다.
새해 인사말에 자주 적히는 “No pain, no gain”이라는 문장을 떠올려 본다. 그 문장 뒤에 “그러나 혼자 아파하지 마십시오.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고, 함께 성장합시다”라는 한 줄을 덧붙이면 어떨까.
인간은 고통 없이 진화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서로의 고통을 외면한 채 이룬 진화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 것이다.
박학천 일산새마을금고 이사장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