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사라진다]학생 없는 학교, 도시를 살리다
‘학교’가 사라진 곳에 또 다른 ‘학교’가 들어선다. 이곳은 학생들의 배움터이자 주민들의 휴식처가 된다. 수업이 끝난 교실에는 평생교육이 펼쳐지고, 운동장과 강당에는 세대를 아우르는 웃음이 흐른다. 한 살짜리 갓난아이부터 90세 노인까지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곳. 2026년 ‘지금 우리 학교’는 공간 재구조화·시설 복합화 사업을 통해 지역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거점으로 재탄생한다. 울산 학령인구 감소와 학교 통폐합 현실을 짚어보고, 이를 위기가 아닌 ‘전환’의 계기로 삼아 도시가 생존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 본다.
◇학생이 없다…학교 통폐합 현실
울산은 더 이상 ‘인구 절벽’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도시가 됐다. 통계상으로도 울산 학령인구(6~21세)는 향후 10여년 안에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울산 학령인구는 2025년 16만1000명에서 13년 뒤인 2038년 8만5000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나타난다.
연도별로 보면 2026년 15만7000명으로 2029년까지 14만~15만명대를 유지하다가 2030년에는 13만4000명으로 떨어진다. 감소세는 멈추지 않아 2034년 10만7000명, 2036년 9만5000명 수준으로 주저앉을 전망이다. 통계상 예측 가능한 가장 마지막 시점인 2052년 학령인구는 7만명에 그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2034년은 전년 대비 6.1%(7000명) 감소로, 통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학령인구 절벽은 학교 현장은 물론 도시 전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규모가 점차 작아지는 학교를 살리기 위해서는 결국 통폐합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최소 두 곳 이상의 학교 살림을 합쳐 소규모 학교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환경 개선과 지역 발전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실제 추진 과정에서는 제약이 적지 않다. 구체적인 기준 미비 등으로 논의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학부모들은 원거리 통학과 교육환경 변화 등을 우려하고, 지역과 동문사회에서는 교육 인프라 약화 등 부작용을 걱정한다. 학교 통폐합은 학부모 과반 이상이 반대하면 추진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 최근 남구 동평초와 인근 동백초가 학부모 찬성률 53.8%를 얻으며 2027년 3월부터 통합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남구 도심 내 학교의 통합 결정은 교육 현장을 움찔하게 했다. 학령인구 감소가 읍·면 지역에 국한된 문제로만 볼 수 없는 현실이 됐다는 신호다.
이 같은 흐름 속 새해를 맞아 지방교육 전반의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학교는 더 이상 학생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역을 살리는 인프라로 기능해야 한다”는 인식 전환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학교를 지역사회 교육·문화 거점화와 공동체 자산으로 재정의하고, 지속가능한 교육생태계를 조성해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교육공동체 회복이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과도 맞닿아 있다.
◇학교 재정의…지자체·공동체 협력
전략으로는 학교 공간 재구조화·시설 복합화 사업이 꼽힌다. 학교 공간을 지역사회와 연계해 재설계하고, 교육·돌봄·문화 기능을 결합하는 모델이다.
이는 단순한 교실과 학교의 물리적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 활동의 폭이 넓어지면서 교사 전문성 등이 함께 강화되고, 지역 환경과 주민 생활까지 변화가 확산돼 도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윤범 울산교육연구
정보원 책임연구원은 “울산 학령인구 현안 과제로 교육청 중심 접근으로는 작은 학교 맞춤형 운영과 유휴 공간 활용, 거버넌스 중심 접근으로는 지역 협력체계 강화 대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전초는 소규모 학교 활성화의 실질적인 해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물리적 환경 개선을 계기로 교육 여건을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학생 수 증가라는 가시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입증했다. 주전초 학생 수는 공간 재구조화 사업 사전기획 단계였던 2021년 72명에서 2024년 48명까지 줄었다가 사업이 준공된 2025년 55명으로 다시 늘었다. ‘다시 선택받는 학교’로 전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주전초는 주민 반상회 등이 열리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며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 화진중은 교육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 비중이 높은 학교로 꼽혔지만, 공간 재구조화 이후 학생들이 학교에 더 잘 나오고 생활 태도가 안정되는 등 눈에 띄는 정성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어진초의 경우 노후 시설이 정비되고 유동 인구가 늘면서 주민 생활 환경 전반이 개선되는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졌다.
남목초는 2027년 말 학교복합화사업 준공을 목표로 학교와 지역이 함께 사용하는 복합 커뮤니티 센터 조성에 나서고 있다. 시교육청이 90억원, 동구가 143억원을 각각 부담해 마을 커뮤니티·스터디카페, 돌봄지원실 등 주민 문화·복지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울주군 영화초에는 학교복합시설인 아동다봄센터가 2030년 3월 개관할 예정이다.
다만 갈등 관리와 사업 운영 주체 혼선, 예산 확보 등은 과제로 제시된다. 교육청과 지자체, 교육공동체 간 협치 없이는 사업 추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교육청은 학교 시설 복합화 사업을 위한 지역협의체를 전국 처음으로 운영 중이며, 2020년 남구 울산여고 운동장 지하에 공영주차장을 조성한 바 있다.
울산시교육청 관계자는 “5개 구·군 담당자를 대상으로 학교 시설 복합화 사업 설명회를 열고, 2026년에는 약 3개교를 추가로 선정할 계획이다. 지자체가 먼저 참여 의사를 밝히고 협의에 나서야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며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고 지역 특성을 반영한 교육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지자체와 교육공동체 간 협력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다예기자 ties@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