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화물·친환경 연료 갖춘 울산항 ‘베이스캠프’ 최적지

2026-01-02     오상민 기자

미국, 중국은 물론 전 세계 주요 항만도시들이 앞다퉈 ‘북극항로’ 선점 경쟁을 펼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빙 가속화는 인류에게 새로운 바닷길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울산항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울산이 가진 두 가지 독보적인 DNA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마르지 않는 화물이다.

울산항 배후에는 정유·화학·자동차 공장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마치 대형마트 옆에 대단지 아파트가 있는 것처럼 항만 배후에서 자체적으로 물동량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화물 창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둘째, 준비된 에너지 정거장이다.

친환경 선박들이 북극의 거친 바다를 오가며 반드시 들러야 할 주유소, LNG·메탄올 등 친환경 연료 벙커링 기지로서 울산항은 이미 최적의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울산항은 단순히 짐만 싣고 떠나는 항구가 아니라 선박을 건조하고, 화물을 채우고, 연료까지 공급하는 토탈 서비스가 가능한 북극항로의 완벽한 베이스캠프다.

본보는 울산시, 항만당국, 울산항 유관기관, 학계 등과 함께 북극항로 성공 키워드를 모색해 본다.

극항로 에너지 수송 유리
울산항, 단기 선점 가능성

부산항이 컨테이너 화물을 처리하는 물류 플랫폼이라면, 울산항은 배후 산업단지를 지원하는 산업지원 항만이다.

북극항로 시대, 울산은 단순 물류 경쟁이 아닌 친환경 에너지 공급과 고부가가치 서비스로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본보는 지난달 8일 울산항만공사 다목적홀에서 ‘신(新)해양르네상스를 꿈꾼다, 북극항로를 개척하라’를 주제로 좌담회를 실시했다.

좌담회는 전상헌 본보 정경부장이 좌장을 맡고 박헌식 울산시 해양수산과장, 곽동해 울산지방해양수산청 항만물류과장, 정순요 울산항만공사(UPA) 운영부사장, 이창훈 UNIST 경영과학부 교수, 유병건 울산항만물류협회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울산만의 강점인 ‘에너지 허브’ 기능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무리한 컨테이너 경쟁보단
동해안권 연합 TF 필요

우선 울산항의 인프라를 담당하는 정순요 UPA 부사장은 부산항과 울산항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했다.

정 부사장은 “부산항은 환적 화물 중심의 물류 거점이지만, 울산항은 액체 화물과 원자재를 수입해 배후 산업단지에 공급하는 산업지원 기능을 수행한다”고 정의했다.

그는 “컨테이너선은 정시성이 중요해 북극항로 상용화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원자재와 에너지를 수송하는 울산항은 단기적으로도 북극항로를 선점할 기회가 있다”며 “LNG·암모니아 등 친환경 연료 공급 인프라를 활용해 북극해를 오가는 선박들의 ‘에너지 기항지’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실제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유병건 울산항만물류협회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결국 이익이 창출되느냐가 북극항로 진출의 핵심”이라며 냉철한 현실 인식을 주문했다.

친환경 벙커링 수요 늘것
항만 인프라 지속 확충

유 협회장은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기존 수에즈 운하 항로 대비 물류비와 운송 시간을 약 30% 이상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여전히 유빙 등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산, 울산, 포항이 각자도생할 것이 아니라 동해안권 항만들이 연합해 공동 대응 TF를 꾸려야 한다”며 “무리하게 컨테이너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울산항이 본래 강점을 가진 액체 화물과 특수 선박 서비스에 집중해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창훈 UNIST 경영과학부 교수는 “중국은 이미 북극항로를 통해 컨테이너를 나를 수 있다고 광고하며 러시아와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며 “서방의 제재 속에서도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해 북극항로를 선점해 나가는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세계적 조선·원자력 기술로
초격차 기술 항만 도약해야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이러한 지정학적 파고를 넘기 위해 울산이 갖춰야 할 무기로 ‘데이터’와 ‘차세대 추진 기술’을 꼽았다. 그는 “북극항로는 유빙 때문에 최적 경로가 매일 바뀐다”며 “결국 데이터 싸움이다. UNIST가 위성 영상과 머신러닝을 활용해 유빙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최적 항로를 제시하는 모델을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창훈 교수는 “암모니아조차 유해 물질 배출 이슈가 있는 상황에서 결국 대안은 SMR(소형 모듈 원자로) 기반의 핵 추진 엔진이 될 것”이라며 “울산은 세계 최고의 조선 기술과 원자력 기술을 동시에 보유한 유일한 도시로 친환경 벙커링은 물론, 미래 SMR 선박의 건조와 개조까지 가능한 ‘초격차 기술 항만’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행정 당국과 정부 기관도 ‘오일·가스 물류 신북방 전진기지’ 육성을 목표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박헌식 울산시 해양수산과장은 “현 정부 국정 과제에 울산을 북극항로 시대의 고부가가치 에너지 전진기지로 육성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며 “울산연구원 등을 통해 중장기 발전 전략과 로드맵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장기 발전 로드맵 수립
기업 인허가 절차 등 지원

박 과장은 이어 “과거 현대차나 HD현대중공업 사업 추진 당시 공무원을 현장에 파견해 지원했던 것처럼, 북극항로 개척에 나서는 기업들의 인허가 등 행정 절차를 적극 뒷받침하겠다”며 “해수부의 4차 항만 기본 계획 수정 과정에서도 울산의 에너지 특화 전략이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곽동해 울산해수청 항만물류과장은 “북극 자원을 수입해 저장·가공·분배하는 ‘에너지 물류 허브’로서의 기능이 충분하다”고 진단하며 “북극항로 시대가 본격화되면 친환경 벙커링 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이에 대비해 항만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이날 논의된 내용을 구체화 및 공유하기 위해 산·학·연·관이 참여하는 협력 체계(TF) 구성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오상민기자 sm5@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