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7장 정유재란과 이중첩자 요시라 (109)

2026-01-08     차형석 기자

“천동, 나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너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거다. 내가 너를 저주하겠다.”

“내가 죽어서 지옥에 가더라도 조선 백성을 위해서 너의 목은 반드시 가져갈 것이다.”

말을 마친 후 천동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천동은 생각을 바꿔서 세르페데스 신부의 목을 취하는 대신 그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

“고니시에게 전해라. 십만 조선인의 목숨을 빼앗은 대가로 예수회 종군신부인 당신의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라고. 지옥이 있다면 거기서 너와 내가 만나야 하늘에 정의가 있는 것이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지옥에서 보자, 세르페데스.”

땅바닥에 흩어진 세르페데스 신부의 머리카락을 보며 천동은 그곳을 빠져나왔다. 구로다 군 진영을 벗어난 그는 숲속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이튿날 아침에 운 좋게도 주인이 없이 떠도는 말을 잡을 수 있어서 그놈을 타고 울산으로 달리기 시작한 그는 도중에 금오산 자락에서 야생열매로 점심을 해결한 뒤에 다시 쉬지 않고 말을 달렸다. 다행히 말의 건강상태가 좋아서 저녁 무렵에 울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동은 아내가 된 옥화에게 너무 미안해서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미안해, 너무 오랫동안 집을 비워서.”

“나 혼자 무섭기는 했지만 서방님의 동무들이 곁에서 지켜주어서 그런대로 견딜 만했어요. 가신 일은 잘 되었어요?”

“잘 된 거 같아. 그동안 좀 혼란스러운 것이 있었거든. 그런데 이젠 정리가 된 거 같아. 당신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야. 고마워.”

“뭐가 고맙다는 건지는 몰라도 잘 되었다니 되었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진지 드셔야죠.”

“밥은 조금 있다가 먹어도 돼. 잠시만 이대로 있자. 당신 냄새가 너무 좋아.”

“당신도 참….”

둘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천동은 마음이 아늑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에 옥화는 분주하게 저녁을 준비했고 천동은 집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손봐야 할 곳이 생겼는지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집이란 남자의 손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부인인 옥화가 얼마나 부지런을 떨었는지 그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고생한 흔적이 보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천동이 집을 둘러보는 동안 부인은 서둘러서 저녁준비를 마쳤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에는 오이소박이며 산나물들이 올라왔다. 말린 호박과 시래기를 넣어서 끓인 뚝배기 된장찌개는 냄새가 너무 구수해서 식욕을 자극했다.

“어서 드세요.”

“왜 수저가 하나지? 당신도 배고플 텐데 같이 먹어야지.”

“아니에요. 시장하실 텐데 먼저 드세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굳이 밥상에서 내외를 할 필요가 없잖아.”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