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민의 불역유행(不易流行)(31)]전쟁과 평화, 진정 선택할 수 없는 일인가?

2026-01-09     경상일보

겨울이 되면 왠지 러시아 음악을 더 자주 찾게 된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와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선율도 탁월하고,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은 매번 들어도 단연 최고다. 경쾌한 춤곡이지만 어딘지 쓸쓸하고 애처로움이 있어 우수적 감상에 젖어 든다. 프랑스 여배우 소피 마르소가 열연했던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비극적 결말이 떠올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안나가 살았던 당시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귀족 사회의 퇴폐적인 데카당스(Decadence)적 시대 분위기가 떠오르면서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유럽사의 격동기를 그려낸 톨스토이의 또 다른 대작 <전쟁과 평화>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두 눈이 스르르 감기면서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과 춤추고 있는 오드리 햅번의 순수한 미소와 함께 니노 로타의 ‘나타샤의 왈츠’가 들려온다. 러시아 문학과 음악에 내재돼 있는 사랑과 일상이라는 테마는 늘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와 마주친다. 평화로운 순간은 길지 않았고, 전쟁은 예고 없이 삶의 중심으로 스며든다.

2026년 병오년 새해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세상 곳곳에서 들리는 전쟁의 포성은 멈출 것인가, 아니면 통제 불가능의 확전으로 번져갈 것인가? 영화 ‘The Day After’와 ‘A House of Dynamite’는 핵전쟁이 얼마나 돌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지와 그 결과로 45억년 지구 역사상 여섯 번째의 멸종이 다가올 수 있다는 대재앙의 끔찍함을 경고하고 있다. 제5차, 6차 산업혁명을 통해 어쩌면 실현될지도 모를 영구적 평화의 꿈이 꿈으로 끝날 수 있는 핵전쟁만큼은 절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필자에게 묻는다면, 준비된 답이 있다.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의 존재, 핵무기가 만들어 낸 상호확증파괴의 공포, 그리고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지난 50여년 동안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핵무기의 수량 확대와 고도화, 나아가 핵실험 재개선언과 심지어 핵 사용을 통한 전쟁 종식 가능성조차 공공연하게 언급되고 있다. 21세기 오늘날 전쟁 억제력은 강대국 간의 전면전을 다행스럽게도 막고 있지만, 전쟁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제거하지는 못하고 있어 핵전쟁의 불씨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이 지났지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도자들의 광기 어린 한 번의 잘못된 선택 때문일까? 아니면 평화 구축을 위해 필요했던 작지만 올바른 선택들을 하지 않았거나 경시했던 결과인가? <전쟁과 평화>에서 톨스토이는 전쟁의 시작과 끝을 한 위대한 인물의 결단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거부했다. 나폴레옹조차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가 아니라, 이미 형성된 흐름 위에 놓인 존재일 뿐으로 해석하고 있다. 전쟁은 한 지도자의 일탈이 아니라, 수많은 조연들의 잘못된 선택과 구조가 겹쳐 만들어 낸 결과물로 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한 지도자의 광기나 실수로 치부되기 어렵다.

국제관계론의 현실주의와 구성주의적 시각에서 보자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 이후 미완으로 남아 있는 유럽 안보 질서, 나토의 동진, 러시아의 안보 불안, 강대국 간 세력균형의 붕괴, 러시아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상호 다른 인식, 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지역의 실지 회복이라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사명감과 유럽 국가들과의 연대 의식 등이 장기간 쌓인 퇴적물이다. 총성이 울리기 이전에 이미 전쟁은 우리들의 역사 해석, 언어와 기억 속에서 상당 부분 잉태돼 있다.

전쟁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그 배경과 무관하게 한번 시작되면 끝내기가 어렵고, 참혹함과 고통은 오롯이 무고한 시민들의 몫이라는 점이다. 톨스토이는 “전쟁이란 영광도, 명예도 아니고 그저 의미 없는 살육과 인간의 광기만 연출되는 무대”라고 했다. 레마르크도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소설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전쟁의 참상을 감내해야 했던 젊은 병사들의 희생을 그려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은 국제법상 전쟁범죄에 해당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종전이 이뤄진다고 해도 누군가는 벌을 받아야만 한다. 만약 그리하지 못한다면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인식(sense of impunity)은 곧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올 것이다.

30만여년의 현생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기 때문에 전쟁은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며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밀려오는 조류처럼 그냥 받아들이자고 체념할 것인가? 인간의 본성이 힘을 갈구하고 국제질서는 안보 딜레마의 구조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전쟁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전쟁은 현실이 되고 평화는 비현실적인 이상이 된다.

전쟁이 수많은 선택이 누적된 결과라면 평화도 마찬가지다. 공허한 국제 선언이나 이상주의적 감상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냉정한 현실 인식과 체계적인 설계 그리고 위협을 관리하려는 작지만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위협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국가들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반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군사적 긴장이 일상이 되고 충돌 가능성이 상수로 받아들여질수록 전쟁의 암운은 점점 더 밀려올 것이다. 그렇기에 하루빨리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한 ‘내미는 손’이 필요하고 북한도 너무 늦지 않게 잡아야 한다. 어디선가 존 레논의 ‘Imagine’이 들려온다. “You may say I a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그렇다. 새해엔 우리 모두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되자.

박철민 울산대 교수 전 울산시 국제관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