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7장 / 정유재란과 이중첩자 요시라 (110)
말을 마친 천동은 바람같이 부엌으로 가서 박달나무로 만든 숟가락과 대나무로 만든 젓가락을 가지고 와서 부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부부는 의초롭게(부부 사이에 정답게) 저녁을 먹었다.
“이럴 때는 내가 허울뿐인 양반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제대로 된 양반이라면 부부가 한 밥상에서 식사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난 앞으로도 식사는 꼭 당신과 겸상해서 할 거야. 말리지 마. 우리 같은 사람이 이런 거라도 못하면 뭔 재미로 세상을 살아?”
“나리, 고마워요.”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낮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옥화는 부인이자 그린내(연인)였다.
다음 날부터 그는 늦은 추수를 하느라고 정신없이 보냈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죄다 동원해서 벼를 베고 타작을 했다. 품삯으로 양식을 준다는 말에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일을 시켜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열흘 만에 무사히 타작까지 마친 천동은 동헌으로 가서 직접 호방을 데려왔다. 과전법에 의해서 계산된 정확한 조세를 납부하고, 호방에게는 수고비로 쌀 한 섬을 바친 후에 조세납부 확인서를 받아놓았다. 확인서를 받아놓지 않아서 두 번이나 조세를 납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기에 천동은 그 부분을 확실히 해 두었다.
이와는 별도로 천동은 노약자만 있어서 농사를 짓지 못하는 집들을 파악하여 쌀과 잡곡들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며칠 뒤에 쌀 열 섬을 싣고 울산 관아로 가서 군량미로 바쳤다.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울산군수 김태허는 다른 사람들이 본받으라는 의미로 양천동의 우국충정을 칭찬하는 방을 내걸었다.
-보부상 서신 11호-
9월 중순(음력), 왜군들이 도성인 한양의 백오십 리 앞에서 전열을 재정비하느라고 더 이상 진격하지 않고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사이에, 남해에서는 다시 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이 수군 재건을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칠전량 전투에서 도망친 12척의 함선을 회수하여 정비하고 그것으로 1000여 척이나 되는 왜군의 함선을 상대하려는 이순신은 첫 전투를 어디에서 어떻게 치를지에 대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차에 물길의 흐름이 거세고 방향도 시간에 따라서 일정하게 변하는 울돌목을 택하여 적의 함선을 유인, 대파하였다. 싸움에 참전한 적의 함선 수는 133척이었으며, 이 중에서 31척은 격침시키고 92척은 대파했다. 왜군의 전사자는 1만8466명이었으나 조선 수군의 피해는 2명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데 그쳤고, 조선 수군의 전선은 전혀 손실이 없었다. 9월17일(음력)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울돌목이 있는 명량해전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