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문정희 ‘커피 가는 시간’

2026-01-12     차형석 기자

아직도 쓸데없는 것만 사랑하고 있어요
가령 노래라든지 그리움 같은 것
상처와 빗방울을
그리고 가을을 사랑하고 있어요, 어머니
아직도 시를 쓰고 있어요
밥보다 시커먼 커피를 더 많이 마시고
몇 권의 책을 끼고 잠들며

직업보다 떠돌기를 더 좋아하고 있어요
바람 속에 서 있는 소나무와
홀로 가는 별과 사막을
미친 폭풍우를 사랑하고 있어요
전쟁터나 하수구에 돈이 있다는 것쯤 알긴 하지만
그래서 친구 중엔 도회로 떠나
하수구에 손을 넣고 허우적대기도 하지만
단 한 구절의 성경도
단 한 소절의 반야심경도 못 외는 사람들이
성자처럼 흰옷을 입고
땅 파며 살고 있는 고향 같은 나라를 그리며
오늘도 마른 흙을 갈고 있어요, 어머니



쓸데없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

“난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몇 해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나오는 김희성의 대사이다. 김희성은 대사처럼 낭만주의자로 살다 간다. 조곤조곤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처럼 쓰인 이 시에도 화자는 ‘쓸데없는’ 것을 사랑한다고 했다. 노래, 그리움, 상처, 빗방울, 가을 같은 것들.

하지만 이런 것이 과연 무용한 것일까. 노래는 우리에게 풍요로운 정서를 주고, 상처는 아프지만 우리를 성숙하고 자라게 한다. 빗방울은 바로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무엇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직도 ‘시’를 쓰고 있다는 고백. 시를 쓴다는 것은 돈벌이와 거리가 먼 정말 ‘쓸데없는’ 일처럼 여겨지지만, 화자에게는 살아가는 이유이자 삶의 정수이다. 화자는 현실적인 밥보다 커피와 책으로 표현되는 예술적, 정신적 삶에 더 가치를 둔다.

안정된 삶보다 자유로운 방랑을,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어떤 만남을, 외롭지만 굳건하게 자기 길을 가는 존재들을 화자는 사랑한다. 성경이나 반야심경을 외우는 것 같은 고차원적 지식은 없지만, 흰옷처럼 순박하고 순수한 사람들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싶어 한다. 마음을 갈 듯 천천히 커피를 갈면서 고요히 내면을 응시하는 화자의 바람.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