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2026년 새해, 경력단절여성의 소망

2026-01-14     경상일보

2026년의 첫 달입니다. 새해 인사를 나누다 보면, 경력단절여성들의 소망은 놀라울 만큼 단순합니다. “다시 일하고 싶어요. 그리고 예전의 나처럼, 존중받으며 일하고 싶어요.”

2025년 통계는 분명 변화의 방향을 보여 줍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15~54세 기혼 여성 중 경력단절여성은 약 110만5000명. 전년보다 약 11만명이 줄었습니다.

18세 미만 자녀와 함께 사는 경력단절여성도 88만명대로 감소했고,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의 고용률은 64%를 넘어섰습니다. 경력단절의 이유는 여전히 육아(약 44%), 결혼, 임신·출산이 대부분이지만, “일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겠다”는 흐름이 통계에 드러납니다.

이쯤 되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좀 나아진 것 아닐까?”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현실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2025년 통계 한 줄이 더 중요한 의미를 던집니다.

경력단절 기간 10년 이상이 40%를 넘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랫동안 노동시장 밖에 머물렀다는 뜻이고, 다시 돌아왔을 때 낮은 임금, 단시간 노동, 불안정한 계약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겉으로는 ‘취업 성공’이지만, 실제로는 경력의 하향평준화가 일어나고 있는 셈입니다.

울산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성 고용률은 점진적으로 올랐지만 제조업, 기술직, 연구·기획 분야에서 여성 비중은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현장에서 들리는 말은 더 솔직합니다. “다시 일하게 되었지만, 경력은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특히 늘봄 돌봄, 방과후 수업, 코딩·디지털 교육 분야에서 많은 경력단절여성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교육을 설계하고, 학부모와 소통하며, 학교와 협력하는 일 이것은 분명 전문 직무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1년 단위 계약, 낮은 임금, 경력 인정의 한계가 반복됩니다. ‘일은 깊어지는데, 직업의 격은 낮아지는’ 아이러니가 계속되는 이유입니다.

물론 2025년은 정책에서도 변곡점이었습니다. 여성 경력단절 실태조사는 대상을 19세까지 확대하며 청년까지 포함했고, AI 활용, 플랫폼 노동, 원격근무 같은 새로운 일 형태까지 조사 범위에 담았습니다. 여성새로일하기센터, 직업훈련, 인턴십, 기업 고용유지 지원도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지점이 있습니다. 정책의 초점이 여전히 ‘얼마나 취업시켰는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새해에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그 여성의 경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이 되고 있는가?” 그래서 2026년의 과제는 분명합니다. 취업을 넘어서 경력의 사다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돌봄·교육·디지털 분야에서 초급 → 책임 → 기획 → 코디네이터 →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는 경로, 경력 인증과 보상 체계, 지속적인 재교육 시스템이 함께 가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개인의 태도도 중요합니다. 첫째, ‘어디든’이 아니라 왜 여기인가를 묻는 태도입니다. 이 일이 나의 과거 경력과 어떻게 연결되고, 앞으로 무엇으로 확장될지 스스로 설계해야 합니다. 둘째, 학습을 멈추지 않는 태도입니다. 코딩, AI, 디지털 문해력, 아동심리, 상담기술 등은 계속 변합니다. 배움을 습관으로 만든 사람에게 기회는 더 크게 돌아옵니다. 셋째, 전문가로서의 자존감입니다. 나는 ‘보조 인력’이 아니라 ‘교육·돌봄·디지털을 통해 사회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순간, 사회도 함께 낮춰 버립니다.

결국 핵심은 이 한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경력단절여성의 경제활동은 ‘생존’이 아니라 ‘성장’이 되어야 한다. 정책은 사다리를 만들고, 사회는 존중의 문화를 만들고, 개인은 역량을 키워 올라가는 구조, 그때 비로소 하향평준화는 멈추고, 경력의 품격이 회복됩니다.

새해의 소망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다시 일하고 싶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낮은 자리로 밀려나고 싶지 않다.” 이 소망이 타협이 아니라 상향평준화로, 불안이 아니라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함께 품어야 할 새해의 약속일지 모릅니다.

정은혜 한국지역사회맞춤교육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