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헤어지다
교실이 비었다. 아이들이 없다. 이제 함께한 시간은 지나갔다. 이곳 이 시간의 주인이었던 아이들이 떠났다. 다음 시간과 공간으로. 아이들은 자기만의 삶의 여정을 다시 시작했다. 새로운 시작을 축하했다. 이맘때쯤 모든 학교에는 기쁜 헤어짐, 설레는 떠남이 있다.
졸업식 아이들을 보내며 눈물을 보인 후배 교사가 있다. 예전 필자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보내는 기쁨보다 헤어지는 아쉬움이 커서일 듯하다. 오히려 보내는 기쁨이 컸다. 헤어지는 아쉬움은 물론 있었지만. 아직 실감이 안 난다. 아이들이 떠났다는 사실이. 마냥 기쁘지도 않다. ‘아이들과 만난 나의 모습이 충분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필자가 사는 나의 세상은 너무 작다. 아이들에게 길잡이가 되기에는. 그래서 너무 작은 내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부족한 나와 마주했던 아이들을 기쁘게 보내기 부끄러웠다. 열심히 노력했던 모습에 대해 아이들이 이해해준 지난 1년이 아이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진심으로 기원한다. 아이들이 수없이 많은 시간과 공간을 마주하길.
필자의 고3 때가 생각난다. 많은 가족이 졸업식에 오셨다. 가족이 기뻐하는 특별함이 교정을 가득 채웠다. 교정 이곳저곳에서 서로 기뻐하며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있었다. 떠난다는 기쁨이 컸다. 힘든 고등학교 시간을, 힘들었던 학교를 떠나는 홀가분함이 컸다. 졸업하는 기쁜 이유가 고교 시절 고통스러운 시간 때문이었다는 것이 우리 세대 모두 느끼는 이유 중 하나였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도 그랬을 수 있다. 더 큰 세상으로 보내는 나의 기쁨과 달리 막연한 두려움이 동시에 있었을 테니.
대학 졸업은 좀 달랐다. 좀 더 어른이 돼서였을까? 고등학교 때보다 고통스럽지는 않아서였을까? 기쁨이 가득했다. 아쉬움도 가득했다. 임용고사를 보고 시작점이 다른 서로의 시간을 마주해야 해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스럽게 서로를 응원했다.
그리고 며칠 전. 전화벨이 울렸다. 무심히 ‘뭐지?’ 하고 발신자를 봤다. 오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심히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 하나도 변하지 않은 친구 목소리가 들렸다. 감사하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대로 우리의 곁에 있었다. 둘 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울었다. 반가움과 여전함에. 늘 곁에 있던 친구를 만났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각자 살았으나 서로의 곁에 우리는 한결같이 있었다. 수업을 가던 우리. MT를 할 때 노래를 부르던 친구. 나를 많이 좋아해 준 친구. 내가 많이 사랑하는 친구.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바로 대학 교정에 나와 친구가 있는 듯했다. 나는 그대로 거기 있다. 친구도 그대로 거기 있었다. 우리들 마음. 서로의 옆에.
우리는 모두 우리들 곁에 그대로 있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 아이들의 삶에도 늘 누군가가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이현국 울산 삼산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