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학년 학폭 ‘관계회복숙려제’ 무용지물
울산에서 실시 중인 초등학교 1~3학년 저학년 관계회복숙려제가 학교폭력 피해학생 보호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역 한 초등 돌봄교실에서 발생한 1학년 동급생 간 학폭 사례는 저학년 학폭 대응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15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3월 북구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한 A군은 여름방학을 앞둔 1학기 말부터 음성 틱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A군의 부모는 위클래스 상담을 통해 자녀에게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A군의 증세는 더 심각해졌고, 부모는 교우 관계 등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상황 파악에 나섰다.
그 결과 A군은 돌봄교실에서 동급생 무리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학생이 던진 책 모서리에 맞아 눈 주변에는 시퍼런 멍이 드는 피해도 입었다.
학교측은 돌봄교실 안에서 지속적이고 일방적인 괴롭힘이 발생한 것을 확인하고, 학폭 사실도 인정했다.
이때부터 피해학생측인 A군의 부모는 깊은 고민과 답답함에 빠졌다. A군으로부터 “쟤보고 날 때리라고 했다” “○○와 같은 반이 되고 싶지 않다” 등 학폭 정황이 의심되는 말을 직접 들었지만, 초등 저학년 특성상 성장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단순한 또래 갈등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학폭 심의 절차까지 밟아야 할 만큼 심각한 사안인지도 혼란스러웠다.
이 과정에서 A군은 학교나 교육당국으로부터 심리 상담이나 병원 치료 지원은 물론, 가해학생측의 사과도 받지 못한 채 학폭 피해 사각지대에 놓였다.
A군측은 “학폭 문제를 제기한 목적은 가해학생 처벌이 아니라, 학교와 가정이 더 보살피고 교육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며 “하지만 학교는 가정에 부탁하고, 가정에서는 학폭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피해자 구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울산에서는 초등 저학년 학폭 사안에 대해 심의 절차 전 관계회복숙려제를 우선 가동하고 있다. 징계보다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바탕으로 학생 간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고, 건강한 학교 문화를 확산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당사자 간 동의를 전제로 운영되는데, 현장에서는 최근 학폭 문제가 ‘자식 싸움’에서 ‘부모 싸움’으로 번지는 탓에 피·가해자 간 대화 시도조차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해학생측이 학폭 사실 자체를 부정할 경우 사실상 관계회복숙려제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A군을 비롯한 피해학생측은 관계회복숙려제가 취지에 맞게 운영되려면, 보호자들의 이해와 공감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심리 상담비 지원 등 학폭 관련 제도를 피해학생측에 적극 안내하며 일상생활과 교실로의 빠른 복귀를 도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A군측은 학교장 등과 수차례 면담을 거쳐 회복적 생활교육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사안을 마무리한 상태다. 학교측은 2학년 진급시 가해학생과 학급 분리를 약속했다. 이다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