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맞은 K-조선, 인력 딜레마에 빠지다]“노동집약 조선업, 기술집약으로 전환해야”

2026-01-19     오상민 기자

울산 동구 조선소 현장이 외국인 인력 1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정작 현장의 숙련 기술은 단절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도 최근 조선업 인력수급 TF를 가동하고 기존의 외국인 쿼터 제도를 손질하기로 하는 등 단순한 양적 투입의 한계를 인정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과 정치권은 언제 다시 불어닥칠지 모르는 불황에 대비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돌릴 해법으로 인력 양성의 법적 토대가 될 ‘조선산업기본법’ 제정과 지자체의 데이터 주권 확보, 미래 먹거리인 ‘K-MRO’ 시장 선점을 제시한다.

장기적으로는 조선업의 체질을 ‘노동 집약’에서 ‘기술 집약’으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이 물량 공세로 추격해오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저가 경쟁으로는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김기수 울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부 교수는 미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시장에 더해 향후 개척될 북극항로 시대 울산항 그리고 K-조선의 새로운 기회로 꼽았다.

김 교수는 “북극항로가 열리면 울산항이 액체 물류와 선박 수리의 핵심 거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단순히 배를 만드는 것을 넘어, 운항 중인 선박을 관리하고 수리하는 MRO 사업은 조선업의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일 미래 시장”이라고 진단했다.

조선·항만업계 전문가들 역시 이 기회를 잡기 위한 열쇠가 결국 사람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MRO 사업’. 특히 미 해군 함정 정비나 스마트 선박 운용은 고도의 보안과 기술 숙련도가 요구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미래 조선 산업 주도를 위해선 친환경 연료 전환이라는 흐름 속 내국인 숙련인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 조선업계 관계자는 “섬세한 기술 소통이 필수적인 MRO 분야는 언어 장벽이 있는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며 “지금 당장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하면, 10년 뒤 K-조선은 고부가가치 시장을 놓치고 하청 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채용과 관련, 일부에서는 ‘지자체 사전 협의 제도화’를 제안했다. 기업이 외국인 인력을 도입하기 전, 반드시 관할 지자체와 협의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지자체가 인구 증가를 예측해 예산을 확보하고, 적시에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외국인 급증에 따른 사회적 비용에 대해 중앙정부 차원의 책임 있는 지원 체계 마련도 필요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건설업이 ‘건설산업기본법’을 통해 시중노임단가 적용, 퇴직공제부금 등 숙련공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는 반면 국가 기간산업인 조선업은 인력 육성과 보호를 위한 모법조차 충분하지 않다고 관련업계들은 판단한다.

정치권이 이러한 입법 공백을 메우기 위해 ‘조선산업기본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의 실효성을 살리기 위한 핵심은 ‘표준임금제’ 도입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깎여나간 인건비를, 숙련도에 따른 적정 임금으로 법제화해 보장하기 위한 완충제 역할이다.

이와 관련, 김정아 울산동구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장은 “경력 기술 뿐만 아니라 고강도 고위험 작업에 따른 정당한 대우와 보상이 이뤄져야 내국인 노동자들이 복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 될 것”이라며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처럼 입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지만, 법 제정을 통해 다양한 문제를 의논하고 해결하는 안정적인 논의틀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오상민기자 sm5@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