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입춘대길(立春大吉)

2026-01-21     경상일보

새해를 맞이해 행운을 기원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달력 첫 장에 소망을 적고, 어떤 이는 해돋이를 보러 가며, 또 어떤 이는 조용히 마음속으로만 한 해의 안녕을 빈다. 그런가 하면 야단스레 행운을 바라는 시기도 있다. 큰 일을 앞두고 괜히 시간을 채근하는 때. 결과를 알기 전까지의 불안과 기대, 무언가를 붙들고 싶은 간절함이 섞인 날들 말이다.

과거 임용고시를 치르러 가던 길이 떠오른다. 겨울이어서인지 유독 많이 보이던 까치, 둘째 날 수업실연을 마치고 허겁지겁 먹었던 햄버거, 그리고 오빠가 건네주던 군만두까지. 돌이켜보면 모두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한 예감을 준 장면이었다. 그 순간의 조심스러운 대화와 한 켠의 한숨까지 유난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마치 그 모든 장면들이 결과로 이어지는 필수적인 과정이었던 것처럼.

사람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생기면 그와 함께한 장면과 행동에 의미를 덧입힌다. 우연이었던 일들이 마음속에서는 표식이 되고, 다시 떠올릴 때마다 “그때도 괜찮았으니 이번에도 괜찮을 거야.” 하고 자신을 다독인다. 징크스처럼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지난한 상황을 견디게 해 주는 불안 해소 장치이기도 하다.

이제 24절기 상으로 대한이 지났다. 가장 춥다는 이 절기의 끝에서 벌써 입춘을 마중 나간다. ‘입춘대길’이라는 네 글자를 문에 붙이며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미리 불러오듯, 글은 때로 현실보다 한발 앞서 마음을 달뜨게 한다. 대문에 붙은 글귀, 운세 뽑기 속 낱말, 포춘쿠키 속 짧은 문구까지. 우리는 몇 글자에 불과한 문장을 보고도 괜히 기대를 품고 이유 없이 마음이 놓이며, 위로를 받는다.

교실에서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운을 기다린다. 특히 이맘때쯤 아이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반배정으로 향한다. “선생님, 저 ○○랑 같은 반 될 수 있을까요?” “친한 애랑 떨어지면 어떡해요.” 하고 묻는 얼굴에는 반배정에 한 해의 운명이 걸린 듯 걱정이 묻어난다.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웃음의 빈도도, 하루의 밀도도, 1년의 기억도 달라질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 바람의 끝에는 결국 ‘누구와 함께하든 잘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실은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다가올 시간을 대비하려는 나름의 다짐이 그 속에 담겨 있다.

우리는 모두 출발선 앞에 서 있다. 새 학기이든, 새로운 자리이든, 혹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어떤 시작이든.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서 요제프 크네히트는 불현듯 떠오른 시의 구절을 반복해서 읊는다. “모든 시작에는 이상한 힘이 깃들어 있어 우리를 지켜 주고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변화의 불확실함과 기대가 뒤섞인 순간에도 시작 그 자체의 힘에 기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문장이다. 대한의 끝에서 입춘을 기다리듯, 다가올 새로운 계절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이들에게 ‘이상한 힘’이 함께하기를.

배상아 울산 복산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