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AI 전환으로 여는 울산 제조업의 여성 일자리
울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조업 도시다. 자동차·조선·석유화학으로 이어지는 3대 주력산업은 국가 산업화를 이끌어 왔고, 지금도 지역 경제의 중추다.
그러나 이 산업 구조는 오랫동안 한 가지 뚜렷한 한계를 안고 있다. 노동의 성별 불균형이다.
2024년 기준 울산의 제조업 임금근로자는 약 17만2000명이다. 이 가운데 남성은 14만9000명, 여성은 2만3000명으로 여성 비율은 13.4%에 불과하다. 특히 주력산업 현장을 들여다보면, 생산·현장 중심 고용에서 남녀 성비가 약 95대 5 수준의 극단적인 남성 편중을 보인다.
제조업이 울산 일자리의 핵심임에도, 그 기회는 성별에 따라 크게 갈라져 있는 셈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중량 작업과 고위험 공정, 장시간·교대근무를 전제로 설계된 산업 현장은 오랫동안 남성 중심으로 표준화돼 왔다. 작업 방식과 조직 문화가 그렇게 굳어지면서 여성은 채용의 입구에서부터 제한받거나, 현장 진입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 결과 울산은 ‘제조업 도시’이면서 동시에 ‘여성이 일하기 어려운 도시’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을 여성 인력의 역량이나 준비 부족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울산시 20~39세 여성의 대졸 이상 비율은 54.0%로 같은 연령대 남성(50.6%)을 오히려 상회한다. 고졸 이상 비율 역시 남녀 모두 99%에 달해, 젊은 세대에서는 교육 격차가 사실상 해소된 상태다. 즉, 울산에는 이미 충분한 교육 수준과 전문성을 갖춘 젊은 여성 인재가 존재하지만, 산업 구조가 이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일터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가정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불균형이 이어진다.
OECD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하루 평균 무급 가사·돌봄 노동 시간은 215분으로, 남성(49분)의 네 배를 넘는다. 제조업처럼 근무 시간이 불규칙한 환경에서 이 부담은 여성에게 경력 단절이나 지역 이탈이라는 선택을 강요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울산의 청년 유출과 여성 인구 감소, 나아가 출생률 저하로 이어진다.
특히 고학력 여성일수록 일과 삶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도시를 선택하는 경향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일할 수 있는 여건과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분리된 도시에서, 청년과 여성에게 울산은 ‘정착의 공간’이 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AI 전환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울산 산업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협동 로봇과 자동화 공정, AI 기반 품질검사와 예지정비, 디지털 트윈을 활용한 원격 제어 기술은 제조업의 운영 방식을 바꾸고 있다. 사람이 직접 수행해야 했던 중량·위험 작업은 기계가 대신하고, 노동자는 관리·분석·판단 중심의 역할로 이동하게 된다. 이 변화는 체력과 성별을 기준으로 설계된 일터를, 역량과 숙련 중심의 표준 직무 체계로 전환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AI 전환이 자동으로 노동의 평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자동화와 AI 도입이 여성 고용 확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직무 재설계와 근무 체계 개선, 교육·훈련 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산업과 정책의 선택이다.
울산이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AI를 활용해 현장 직무를 성별이 아닌 표준화된 역량 중심으로 재편하고, 생산 예측과 공정 최적화를 통해 근무 일정의 안정성과 규칙성을 갖춘 근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산업단지 단위의 공동 돌봄 인프라를 산업 경쟁력의 일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는 복지가 아니라, 인력 확보와 산업 지속성을 동시에 뒷받침하는 제조업 전략이다.
제조업 도시 울산의 미래는 더 많은 물량이나 더 빠른 속도에 있지 않다.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토대에 있다. AI 전환을 생산성 향상의 도구로만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의 기준을 바꾸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그 선택이 울산의 인구 흐름과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백현조 울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