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굿 굿바이, 웰 웰컴: 비상의 신화
보통 때였으면 평범한 어제와 오늘이었을 텐데, 해가 바뀌는 순간 같은 하루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지난해 못 이룬 일의 묵직한 무게가 어느새 새해라는 이름의 희망과 소망 속에서 가벼워진다.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새해’라는 말에 힘이 들어간다.
올해 해야 할 계획을 대략 목록으로 적어본다. 전시 계획부터 매일 1시간 걷기까지. 처음 적는 다짐은 아니지만, 여전히 조금 더 애써 보고 싶다는 마음, 조용한 어른보다는 아직은 시끄러운 어른이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노년의 몸으로 비상의 신화를 다시 쓴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처럼.
말년에 암 수술 이후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었던 마티스는 붓 대신 가위를 들었다. 미리 채색된 종이를 오려 붙이는 컷아웃 방식으로, 조수들에게 벽에 핀으로 고정시키며 화면을 구상하였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 중 하나가 ‘이카루스’(1947)이다.
이카루스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이카루스는 미궁을 설계한 장인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미궁의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크레타섬에 붙잡힌 그들은 섬을 탈출하기 위해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든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루스에게 경고한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열에 밀랍이 녹을 것이라고. 이카루스는 처음엔 이를 지키지만, 점점 비상의 즐거움에 빠져 점점 더 높이 날다 결국 태양 가까이에서 추락한다.
이 신화를 두고 해석은 다양하다. 인간의 오만, 욕망의 한계, 신의 자리까지는 넘지 말아야 할 경계에 대한 경고. 그림의 소장처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마티스가 전쟁과 질병, 가족과의 이별이라는 참혹한 조건 속에서 본인을 이카루스로 투영해, 가슴에 붉은 원은 총에 맞아 죽거나, 폭격으로 희생된 인물을 연상시키도록 그렸다고 해석한다.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이 그림 속 이카루스가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는 젊은 존재로 보인다. 가슴에 박힌 붉은 심장은 총에 맞아 죽은 흔적이 아니라, 태양의 강렬한 열을 품은 심장처럼 느껴진다. 그는 기쁨과 환희에 차서 춤을 추고 있는 것만 같다. 포탄의 흔적이라는 노란색은 나에게 그가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나만의 해석이다.
이카루스의 이야기는 경고로도, 숙명으로도, 도전으로도 읽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의 해석이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치나 경제의 복잡한 문제들도 어느 하나의 단정적인 결론으로 몰아붙이기보다 맥락에 맞는 판단을 요구받는다. 새해에는 새로운 답을 서둘러 정하는 시간이 아니라, 기준을 점검하고 해석의 가능성을 넓히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나는 올해를 경고와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조금 더 신중하게 판단하고 끝까지 애써보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장훈화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