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8장 / 땅을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 (119)

2026-01-22     차형석 기자

태어날 자식을 위해서는 그도 어쩔 수 없이 다시 관직에 나가야 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가장 경멸하는 주상 선조의 치세에서 다시 관리가 된다는 것은 영 꺼림칙한 일이었다. 천동은 임금이 빨리 죽으라고 정화수를 떠놓고 빌기라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그에게는 정말 쉽지 않은 일로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런 일로 고민을 할까?’

천동은 두 동무들이 생각나서 장모님이 만들어 놓은 농주를 호리병에 담아서 동굴을 나섰다. 부지깽이와 먹쇠는 예전에 화전민들이 잠시 머물던 곳에 움막을 지어놓고 피란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움막은 거지들의 거처처럼 너무 허술했지만 그럭저럭 지낼만해 보였다. 무료하게 한참을 기다리니 동무들이 돌아왔다.

“어, 봉사 나리, 언제 왔어요?”

“좀 전에. 어디에 갔다 온 거니?”

“그냥 무료해서 여기저기 쏘다녔어요.”

“그럼 술이나 한잔하자.”

“이 난리 중에 웬 술?”

“일단 받아봐. 어머니가 담그신 거야.”

술잔이 오가고 적당히 취기가 오르자 천동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 글공부 좀 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천한 것이 글을 배워서 뭐하게요.”

“나도 배웠잖아. 글을 배우면 당장 쌀이나 음식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너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줄 거야.”

“나리야 양반이 되셨으니까 우리와는 입장이 다르죠.”

“나도 면천되기 전에 글을 배웠잖아. 내가 글을 배우지 않았으면 농지를 사지도 못했을 거야. 그건 너희들도 알잖아.”

“필요 없어요, 배울 곳도 없고 머리도 나빠서 배우지도 못해요.”

“내가 가르쳐 줄게, 배워봐. 어려울 거 같아도 검술과 다들 바 없어.”

“검술이야 글을 몰라도 배울 수 있는 것이고, 당장에 써 먹을 데가 있으니 배운 거죠.”

대화를 하면서도 전과는 다르게 좀 서먹한 것이 있었다. 그들과 거리를 두지 않았는데도 전과는 달리 거리감이 생긴 것도 같았다. 천동은 자신의 면천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해서 마음속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나한테 진짜 동무는 너희들밖에 없어. 그러니 제발 이러지들 마.”

“우리가 어떻게 했다고 그러세요?”

대식이 퉁명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자, 강목도 뒤따라 따져 물었다.

“양반이 돼서 우리를 불편하게 한 게 누군데 그러세요?”

“그래, 내가 너희들에게 미안하다.”

천동은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