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축제의 땅 봉계, 항쟁의 역사를 만나다

2026-01-23     경상일보

요즘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 복안천 일대는 ‘차박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맑은 계류와 울창한 숲, 도심에서 멀지 않은 접근성까지 갖춘 이곳에는 주말마다 차박족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봉계다목적구장에서는 ‘봉계 한우불고기 축제’가 성황리에 열리며 지역 특산물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 그런데 이 평화로운 봉계 땅에 430여 년 전, 피 끓는 항쟁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바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벌어진 ‘계연전투(鷄淵戰鬪)’의 현장이다.

1592년 8월2일, 경주 노곡리. 의병장 김호(金虎)가 이끄는 의병이 양산에서 언양을 거쳐 경주로 북상하던 왜군 500여명을 기습했다. 계곡 지형을 이용한 매복 작전이 적중했다. 왜군은 큰 타격을 입고 남쪽으로 패주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호의 의병대는 도주하는 적을 놓치지 않았다. 형산강 상류를 따라 울산 경계까지, 약 5~6㎞에 달하는 추격전이 전개되었다. 그 종착점이 바로 두동면 봉계 지역의 ‘계연(鷄淵)’이었다. 닭 모양의 소(沼)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험준한 협곡 지형이 천연의 포위망이 돼 왜군 잔병을 완전히 섬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이 전투는 ‘노곡전투’로만 간략히 알려져 왔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이는 노곡에서 시작해 계연에서 완결된 연속적인 추격 섬멸전이었다. 단순 격퇴가 아닌, 적을 끝까지 쫓아 전멸시킨 의병들의 결기가 서린 전투였다. 계연전투의 의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승리로 경주성 내 왜군은 외부 증원이 완전히 차단됐다. 고립된 적을 상대로 의병들은 9월8일 마침내 경주성 수복에 성공한다. 조선의 신무기 ‘비격진천뢰’가 위력을 발휘한 그 역사적인 전투다.

계연전투가 없었다면 경주성 탈환은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봉계 계연의 협곡에서 울린 의병들의 함성이 경주성 회복의 포석을 깔았던 셈이다.

현재 봉계리 일대는 관광 인프라가 빠르게 갖춰지고 있다. 복안천 봉계구간의 차박 명소, 봉계다목적구장, 한우불고기 축제까지. 여기에 계연전투지라는 역사 콘텐츠가 더해진다면 어떨까.

첫째, ‘계연전투 역사탐방로’ 조성을 제안한다. 노곡리에서 계연까지 의병들이 왜군을 추격한 동선을 따라 걷는 트레킹 코스를 만들 수 있다. 형산강 상류의 수려한 자연과 임진왜란의 생생한 역사를 함께 체험하는 코스가 될 것이다. 둘째, 계연전투 현장에 소규모 기념비와 안내판 설치가 필요하다. 거창한 시설이 아니어도 좋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의미가 있는지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셋째, 봉계 한우불고기 축제와 연계한 ‘의병 역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축제장을 찾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역사 교육과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역 특산물과 지역 역사가 만나 시너지를 내는 모델이다. 넷째, 치술령 의병 결의지와 연계한 광역 역사관광 루트 개발도 고려할 만하다. 1590년 7월28일, 류정 등 9인이 치술령에서 김유신의 고사를 읊으며 나라를 지킬 것을 맹세했다. 계연전투지와 치술령을 잇는 ‘울산 의병 역사길’은 역사 교육과 관광을 결합한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

430여년 전, 이름 모를 의병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 땅에서 오늘 우리는 차박을 즐기고 축제를 연다. 그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오히려 평화롭게 이 땅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선조들 희생의 결실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그 역사를 기억하자. 복안천 물길 따라 흐르는 계류 소리에, 의병들의 함성이 섞여 있음을 기억하자. 봉계의 푸른 산자락 어딘가에, 나라를 지키려 달려간 발자국이 남아 있음을 기억하자. 계연전투지의 재발견은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다. 지역의 정체성을 풍요롭게 하고, 관광 자원의 깊이를 더하며, 다음 세대에게 전할 가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다.

봉계를 찾는 이들에게 맛있는 한우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지킨 의병들의 이야기도 함께 전해지길 바란다. 그것이 430여년 전 계연의 협곡에서 스러져간 이들에 대한 우리의 작은 예의가 아닐까.

이상안 경주대학교 전통건축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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