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법정이 당신 곁으로-영상재판 시대

2026-01-26     경상일보

코로나 팬데믹의 확산은 우리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회사들은 재택근무를 도입하며 근로 형태가 근본적으로 달라졌고, 원격수업·비대면 소비·디지털 행정 등 다양한 사회 현상이 빠르게 정착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법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시기와 발맞추어 사법부는 영상재판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영상재판은 2021년 11월 확대 시행 이후 불과 3년 만에 46배 증가했다. 2022년 1분기 801건에 불과했던 영상재판은 2025년 2분기 3만7186건으로 급증했다. 같은 시점 누적 건수는 16만4907건에 이르며, 올해 안으로 20만건도 넘어설 전망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영상재판’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일반 시민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재판 경험이 없는 대다수 국민에게 영상재판은 아직 낯설고 먼 개념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이미 영상재판이 ‘일상’이 되었지만, 정작 국민에게는 그 변화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채 ‘그들만의 변화’로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영상재판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당사자나 변호사, 증인이 법정에 직접 출석하지 않고 화상 시스템을 통해 재판 절차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법령상 영상재판은 민사·가사·행정·특허 사건의 변론기일, 심문, 조정, 당사자·감정인신문, 나아가 증인신문까지도 원칙적으로 활용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변론기일에서만 주요하게 활용되지만, 점차 이에 대한 확대도 나타나고 있다.

영상재판의 장점은 분명하다.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물리적 거리를 허문다. 지방에 거주하는 당사자가 서울 법원 재판을 위해 하루를 통째로 비울 필요가 없다. 해외 체류자도 변론기일에 참여할 수 있다. 심리적 압박이 큰 피해자나 미성년자의 경우 영상신문은 2차 피해를 줄이는 역할도 한다. 이는 사법 접근성 측면에서 중요한 진전이다.

국제적 확장도 주목할 만하다. 2025년 9월 특허법원은 해외에 있는 외국 기업 당사자가 현지에서 영상으로 직접 변론하는 절차를 공식 허용했다. 동시·이시 통역은 물론 AI 기계번역 자막까지 제공한다. 한국에 오지 않아도 한국 법원의 재판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한국 사법부가 국제 소송 경쟁력을 갖추고, 외국인에게도 열린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편의성의 비약적 향상은 그림자를 동반한다. 일부 변호사가 운전 중 영상재판에 접속하거나, 지하철 이동 중 스마트폰으로 출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화면만 켜져 있으면 ‘출석’으로 인정된다는 오해와, 집중·예의 없이 기일을 소화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은 재판의 권위와 품격을 훼손할 수 있다. 법원 안팎에서 영상재판 운영 기준의 대대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기술적 한계도 여전하다. 접속 불안정, 음성 지연, 화면 끊김은 재판의 흐름을 방해한다. 무단 녹화·녹음을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개인정보나 기업 기밀이 다뤄지는 사건에서는 더 큰 우려를 낳는다. 무엇보다 기술이 법의 원칙을 대체할 수는 없다. 2024년 대법원은 해외 증인의 화상 진술이 ‘적법한 선서 없이 이뤄졌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편의성보다 절차적 적법성이 우선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형사재판의 직접주의·대면주의·공개주의 같은 근본 원칙 역시 영상재판에서는 제한적으로만 구현된다.

그럼에도 영상재판은 AI 속기, 자동 통역, 스마트 법정과 결합해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을 어떻게 국민의 권익 보호라는 본질에 맞게 조율하느냐이다.

영상재판은 법정의 문턱을 낮추는 제도다. 시간과 거리, 경제적 부담, 심리적 압박을 줄여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게 돕는다. 법은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지만, 법을 이용하는 데는 여전히 많은 장벽이 존재했다. 영상재판은 그 장벽을 허무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법원에 부는 새바람이 단순히 ‘더 빠른 재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가까운 재판’ ‘더 열린 재판’을 만드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영상재판의 확대가 개개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실질적인 길이 되고, 국민 모두가 정의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나라 법률사무소 율빛 대표변호사 울산대 법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