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8장 / 땅을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 (120)

2026-01-26     차형석 기자

“그게 굳이 사과까지 할 일은 아니지만, 우리 기분이 좀 그래요.”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 줘. 부탁이야.”

“나리는 그렇게 생각을 해도 주위 사람들이 우리가 그런 행동을 하면 가만히 있겠어요? 어차피 여기는 조선이고,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물론 나리와 우리가 지금처럼 사람이 없는 데서 만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주막에서 술 한잔 남의 눈치 안 보고 마실 수 있겠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 나도 언제부터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치 않아. 그렇지만 내 마음은 언제까지나 너희들의 동무야. 이건 믿어줘.”

“알았어요. 오늘은 그냥 술이나 마시죠. 아직까지는 우리 동무 맞는 거지?”

“그게 아니고 죽을 때까지 동무라니까.”

“너무 장담하지 말아요. 동무도 서로 입장이 비슷해야 되는 거지. 양반과 천민이 동무로 지내봐요. 양반들이 당장에 죽이려고 들 겁니다. 그냥 골치 아프게 그런 거 생각하지 맙시다. 내가 비록 무식하지만 나도 얻어들은 풍월이 있어요. 세상일이라는 게 하나를 얻으면 무엇인가 하나는 잃게 된다고 하더군요. 나리가 출세를 하면 새로운 벗들이 생기는 반면, 옛 동무들은 잃게 될 겁니다. 중산마을의 박 진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새겨들어야 할 겁니다.”

까막눈에 무식쟁이로만 알았던 부지깽이의 말에 천동은 다소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란 잘났든 못났든, 무식하든 유식하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다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자연으로부터도 터득하고,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가지게 된다. 그런 것들은 학문적 체계를 갖춘 것이 아니기에 감히 뭐라고 이름 붙이지 못하지만, 개개인의 생각이라고 해서 공맹에 뒤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혼 재미는 어때요?”

천동은 생각 속에 빠져 있다가 강목의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응, 그거야 당연히 좋지.”

“아무리 그래도 좀 심한 것 같다. 결혼했다고 이렇게 동무들을 멀리하다니….”

“알았어, 미안해. 그래서 오늘 내가 이렇게 술병을 들고 너희들을 찾아 왔잖아. 참, 나 몇 달 후면 아버지가 된다. 기분이 뭐라고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묘해.”

“정말?”

“당연히 정말이지.”

“축하합니다. 드디어 봉사 나리도 자식이 생기는 거네요.”

“그러게. 너무 기뻐서 안 먹어도 배가 불러.”

“왜 안 그러겠어요.”

두 사람은 천동에게 자식이 생기는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임진란 이후에 많은 것이 변했어. 전쟁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변하고 사람들은 거기에 적응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지. 변하지 않는 것은 땅밖에 없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평생 땅이나 파면서 살 거야.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