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등용적 이완, 비움으로 채우는 교사의 시간

2026-01-28     경상일보

심장은 매 박동마다 채우고 내보내는 일을 반복하지만 그 사이에는 잠깐의 고요가 있다. 이는 ‘등용적 이완’으로, 심실의 부피는 유지된 채 압력만 급격히 떨어지며 다음 채움을 준비하는 찰나의 구간이다.

교사도 그렇다. 아이들 앞에서 겉으로는 같은 자리, 같은 역할을 지키지만 교사도 사람인지라 마음의 압력은 쉽게 올라가고 내려간다. 그럼에도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때로는 힘을 더하는 수축보다 유연하게 풀어내는 이완을 삶의 안쪽에 심어두어야 한다.

등용적 이완은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방실판막이 열리기 전, 심실의 근섬유는 칼슘을 다시 끌어들이며 긴장을 풀고, 곧 이어질 충만을 위해 공간을 마련한다. 우리도 한 해의 출발선에서 이 과정을 닮아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선 올해 무엇에 집중할지 충분히 숙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타인의 성취와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내 삶의 압력은 이유 없이 높아지고, 결국 나의 방향은 흐려진다. 지금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무엇인지, 내가 지켜야 할 우선 순위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시간은 느려 보여도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

등용적 이완의 순간처럼, 겉으로는 멈춘 듯해도 내면에서는 정리와 회복이 일어나고 있다. 비교 대신 호흡을 고르고, 주변의 소리 대신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 유연함이 한 해를 꾸준히 달리게 할 원동력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어떤 스승이 되고 싶은지 더 자주 되묻고 싶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우리의 말을 흘려듣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시선이 멀어지고, 고개가 숙여지고, 반응이 없을 때 교사의 마음 압력은 한순간에 치솟는다.

하지만 심장이 다음 박동을 포기하지 않듯, 우리도 아이들의 ‘지금’을 단정 짓지 않아야 한다. 어떤 학생에게는 오늘의 “괜찮아, 다시 해보자” 한마디가 스스로를 살리는 첫 실마리가 되고, 교사가 건넨 작은 배려가 세상을 믿어보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 말을 저장 해두는 존재라는 걸 잊지 않고,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저는 올해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신호를 읽는 교사가 되고 싶다. 아이마다 다른 속도를 존중하며 기다릴 줄 아는 교사로.

때로는 지도보다 ‘관찰’이 먼저이고, 훈계보다 ‘질문’이 먼저다. 판막이 열리는 타이밍을 기다리듯, 아이의 마음 문이 열리는 순간을 성급히 재촉하지 않는 것. 그 기다림이 결국 신뢰라는 혈류를 만들어 내는 힘이 아닐까.

다음 주면 24절기의 첫 단추인 ‘입춘’이다. 계절은 이미 봄 쪽으로 몸을 돌리기 시작한다. 코끝이 찡한 찬 공기가 물러가고 온기를 머금은 바람이 피부에 스며들 무렵이면, 우리도 조금 더 나은 사람, 조금 더 나은 교사가 되어 있기를 바래본다.

각자 마음 속에 그리는 봄의 모습은 달라도,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 푸릇한 시작이 돋아나도록 자신을 잘 살피면 좋겠다. 등용적 이완처럼 잠깐의 고요 속에서 압력을 낮추고 다음 박동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 그 유연함으로 우리 모두의 한 해가 부드럽게 열리길 바래본다.

김강현 울산온라인학교 보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