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8장 / 땅을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 (123)

2026-01-29     차형석 기자

1598년 8월18일(음력), 왜국의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했다. 관백의 사후에 왜국을 평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8월28일(음력)에 1차 철군명령을 한 데 이어서 9월5일(음력)에 다시 2차 철군명령을 하달하였다. 조선의 조정에서는 9월이 되어서야 왜군이 조선에서 철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잠시 조용했던 조선의 조정이 바쁘게 움직였다. 9월22일부터 26일까지 벌어진 2차 도산성 전투는 양측 모두 승패 없이 끝났다.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 9월 말부터는 서애 류성룡에 대한 서인과 주상의 직접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양반의 특권을 제한한 ‘전시개혁입법의 폐지’가 거론되더니 불과 며칠 만에 폐지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속오군에 편성되어 있던 관노비들을 다시 노비로 잡아들였다. 면천에 대한 희망으로 즐겁게 군역을 치르던 관노비 출신의 노비들은 찬물을 뒤집어쓰고 다시 가축 같은 삶으로 돌아갔다.

면천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던 부지깽이(강목)와 먹쇠(대식)는 절망했다. 그동안 천동에게서 글공부도 하고 검술도 열심히 배웠는데 모든 게 다 허망하게 생각되었다. 그들은 배움을 포기하고 술로써 시름을 달랬다.

천동 또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임금의 교지에 의해서 개별적으로 면천이 된 것이기 때문에 다시 천민으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되지만, 관노로 있다가 면천의 희망을 품고 속오군에 들어가서 열심히 훈련받고 직접 전투에도 참여하여 목숨 걸고 싸운 동무 만석은 아예 삶의 희망을 버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천동이 그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짐승의 밥으로 버려진 상태였다. 그는 형체조차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동무의 시신을 겨우 수습하여 묘비명도 없는 봉분을 만들어 주었다. 그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술 한 잔 따라 놓고 절을 한 후에 한동안 가슴속에 쌓인 슬픔을 쏟아놓고 우는 것이 먼저 간 동무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천동은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주상과 조정이라면 전란이 완전히 끝난 뒤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전시개혁입법의 폐지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서막인지도 모른다. 처자식이 없는 혈혈단신의 상황이라면 그냥 하루하루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그럭저럭 살아도 되지만,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다 잊고 심산유곡에 들어가서 은둔자로 살아가는 것은 태어날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면 아비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천동은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처럼 안정된 시간들이 앞으로 며칠이 될지 몇 달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처인 옥화와 좋은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 천동은 다음 날부터 동해바다에서 해 뜨는 광경을 그녀와 두 손 꼭 잡고 구경하기도 하고, 산중에서 저녁 무렵에 해 지는 광경도 같이 보았다. 또한 무룡산의 여러 계곡으로 가서 가재가 있나 돌을 들추어 보기도 하고 머루를 따러 다니기도 했다. 그녀가 힘들어 하면 험한 산길을 안고 다녔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있었고, 젊음이 있었다. 그렇게 꽤 여러 날을 그녀와 함께 보내며 시간 가는 것을 잠시 잊었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