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수 변호사의 울산, 법 이야기]불은 우연처럼 시작되지만, 책임은 고의로 판단된다

2026-01-30     경상일보

최근 울산에서 발생한 화재는 발생 원인 자체보다, 화재에 대한 법적 책임이 어떤 기준으로 판단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이번 화재가 도심 속 자연 공간으로 자리 잡아 온 명촌 억새 군락지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분노와 상실감은 적지 않다. 그러나 사건을 평가할 때 감정적 반응보다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법이 화재를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다.

화재 사건에서 가장 자주 혼동되는 개념은 실화와 방화의 구별이다. 실화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해 불이 난 경우로, 과실범에 해당한다. 반면 방화는 단순히 불을 놓겠다는 명확한 의도가 있어야만 성립하는 범죄는 아니다. 불이 번질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행위를 했고, 그 결과를 감수하거나 용인했다면 방화로 평가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법적 쟁점이 바로 ‘고의’와 ‘과실’의 경계다.

형법은 과실을 다시 단순 과실과 인식 있는 과실로 나눈다. 인식 있는 과실이란, 결과 발생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상했으나 “설마 그런 일이 생기겠느냐”고 가볍게 넘긴 경우를 말한다. 반면 미필적 고의는 결과 발생의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그 결과가 발생해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고 행위를 하는 경우다.

두 개념은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보이지만, 법적 평가는 전혀 다르다. 실무에서 이 구별은 행위 당시의 정황을 종합해 판단된다. 장소의 특성, 계절과 날씨, 바람의 세기, 주변 환경, 그리고 행위자의 경험과 인식 수준이 모두 고려 대상이 된다. 단순히 “고의는 없었다”는 진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불이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가 핵심이다.

명촌 억새 군락지와 같은 자연 공간은 계절적 특성상 화재 위험이 매우 높은 장소다. 건조한 시기와 강한 바람이 겹치면 작은 불씨 하나가 걷잡을 수 없는 화재로 번질 가능성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불을 피우는 행위는, 그 결과를 명확히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법적으로는 위험을 인식하고 감수한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 이 경우 인식 있는 과실을 넘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여지가 커진다.

형법이 방화죄를 엄격하게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재는 일단 발생하면 피해 범위와 규모를 통제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방화죄는 실제로 인명 피해가 있었는지, 재산 피해가 얼마나 발생했는지보다, 불을 놓는 행위가 지닌 위험성 자체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장소이거나 결과적으로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방화로 인정되면 중한 처벌이 가능한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화재가 반복되는 이유는, 고의에 대한 법적 개념이 여전히 대중에게 충분히 공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방화는 흔히 악의적인 범죄자의 행위로만 인식되고, 그 외의 화재는 모두 실수나 사고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법은 그렇게 단순하게 나누지 않는다. 불이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도 행위를 했다면, 그 순간부터 책임은 과실의 영역을 벗어난다.

화재 예방은 처벌 강화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법이 화재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고의와 과실, 인식 있는 과실과 미필적 고의의 경계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함께 형성돼야 한다. 법의 기준이 명확히 공유될 때, 예방 역시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불은 종종 우연처럼 시작된다. 그러나 법은 그 우연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불씨를 만든 행위가 어떤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는지를 묻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판단한다. 명촌 억새 군락지의 상실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연을 태운 불은 우연일 수 있지만, 그 책임까지 우연일 수는 없다.

강성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