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8장 / 땅을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 (124)

2026-02-02     차형석 기자

1598년 11월18일(음력), 울산의 도산성에 주둔하고 있던 가토 기요마사는 성을 불태우고 부산으로 퇴각하였고, 서생포 왜성의 구로다도 같은 날 퇴각하였다. 이로서 울산 인근에 주둔해 있던 왜군들은 전부 물러났고, 경주 등지로 피란가거나 산속에 숨어서 살던 백성들은 하나둘 자신이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하루 뒤인 11월19일(음력)에는 조선을 누란의 위기에서 지켜낸 통제사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석연치 않은 죽음으로 이승을 떠났고, 공교롭게도 그날 이순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류성룡은 북인과 주상에 의해서 파직되었다. 북인들의 끈질긴 공격에 역적으로 몰려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류성룡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란 이후에 일기처럼 써왔던 ‘징비록’의 기록도 멈추었다.

전시개혁입법의 폐지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김 초시는 본격적으로 천동과 동무들의 토지를 빼앗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친지들의 도움을 받아서 모사에 능한 자를 소개받았다. 위조문서 한 장당 무려 다섯 냥이나 주고 그것들을 사들였다. 김 초시는 울산 관아에 가서 해당 토지의 주인을 가려줄 것을 청하였다.

1598년 12월5일(음력)에 울산 관아에서 천동에게 연락이 왔다. 천동과 동무들의 소유로 되어있는 토지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기에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주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천동은 기가 막혔지만 자신과 동무들은 토지에 대한 확실한 문서가 있기에 별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형방은 판결에 앞서서 반나절 동안 관계인 증언을 듣고 사건의 정황과 양측의 진술을 꼼꼼히 기록하였다. 이 황당한 사건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울산 군수 김태허는 난감해서 육방관속들을 불러서 의견을 물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 거 같은가?”

자신의 의견 밝히기를 꺼려하는 가운데, 이방이 나서서 강한 어조로 말했다.

“양쪽의 주장이 다 맞는 것 같으면 응당 향반인 김 초시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후환이 없습니다. 지금 조정이 어찌 돌아가는지 잘 생각해 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군수가 보기에 정황상으로는 천동과 그의 동무들이 토지의 주인으로 보였으나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양쪽의 문서가 다 진본처럼 보여서 어느 것이 위조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김 초시 쪽에는 도성의 당상관으로부터 좋게 잘 판결해 달라는 청탁까지 들어온 상태에서 이방도 김 초시 편을 들자, 군수는 그렇게 판결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튿날 동헌 앞에서 군수는 토지의 주인에 대한 판결을 하였다.

“육방관속과 본관이 심사숙고한 결과 문제의 토지는 초시 김응석의 소유임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는바, 봉사 양천동과 강목, 대식은 해당 토지를 주인인 초시 김응석에게 돌려주고 금년에 지은 농사에 대해서는 소작료를 지급하라. 그리고 양천동과 강목, 대식은 남의 토지를 무단 점유하여 사용한 죄를 물어서 보름 동안 옥에 가둔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