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정치의 논쟁 넘어 시민의 문화로 가야
울산의 문화시설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정치의 언어로 흐르고 있다. 최근 타운홀미팅에서 대통령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울산의 문화시설 구축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하자 울산시가 추진 중인 세계적 공연장 ‘더홀1962’를 둘러싸고 해석과 입장이 엇갈렸다. 울산시는 정부가 사업의 필요성과 방향성에 공감한 신호로 받아들였지만,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은 대통령과 문체부가 언급한 문화시설 지원과 울산시가 추진 중인 공연장은 “장소와 성격이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문화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울산에서 시민을 위한 문화 인프라를 확충하자는 논의가 어느새 ‘누가 시작했냐’ ‘어느 쪽의 공약이냐’를 따지는 정치적 논쟁으로 변질됐다.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도시지만, 문화 인프라만큼은 늘 변방에 머물러왔다. 시민들이 공연 한 편을 보기 위해 부산이나 서울로 발길을 돌리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공연기획사 역시 울산을 건너뛰고 대구나 부산을 택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수요가 부족해서라기보다 중·대형급 공연장의 선택지가 제한되고 투어 공연이 요구하는 무대·음향·반입 동선 등 운영 여건이 충분히 축적·정례화되지 못했다는 인식이 누적된 탓이 크다. 여기에 부산·대구 같은 거점 도시가 가까워 한 도시를 더 추가할 이유가 약해지는 구조까지 겹쳤다.
결국 시민의 문화 향유권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어떤 ‘그릇’을 준비해 왔는가의 문제다. 더홀1962 구상은 이런 구조적 한계를 넘기 위한 시도의 연장선에 있다. 삼산매립장 부지를 활용해 고품격 음향의 다목적 공연장과 몰입형 디지털 콘텐츠 상영관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 좌표를 세우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미 시는 국제 지명공모를 통해 국내외 정상급 건축가와 설계사무소를 참여시키는 등 상당한 행정·재정적 투자를 진행해왔다. 프랑스와 덴마크의 스타 건축가, 국내 최상위 설계사무소들이 삼산매립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어울리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려되는 것은 이 정치적 논쟁이 길어지는 사이 사업이 원점으로 되돌아가거나 무산돼 그동안 투입된 공공 예산과 행정력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상황이다.
문화시설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점은 이미 여러 도시가 증명해 왔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스피어 공연장은 첨단 미디어 기술과 독창적인 공간 디자인을 앞세워 도시의 이미지를 ‘카지노 도시’에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상징적인 문화시설 하나가 관광, 콘텐츠 산업, 도시 브랜드 전반에 파급 효과를 낸 사례다. 모든 도시가 그 모델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지만 문화 인프라가 도시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제 논쟁의 초점이 옮겨져야 한다. 사업이 누구의 공약이었는지, 어느 정당의 구상이었는지를 따지기보다 울산 시민에게 어떤 문화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의 언어는 여기서 멈추고, 시민의 언어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석현주 사회문화부 차장 hyunju021@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