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붉은 말’의 힘과 에너지, 새로운 도약을 향해
자동차 이전의 교통수단은 말이었다. 울산에서 자동차를 수출하는 선박이 오가는 바다 가까이에, 한때 말을 기르던 목장이 있었다. 바로 울산 동구의 남목마성 일대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쓸 말을 기르기 위해 해안과 섬을 중심으로 목장을 설치했고, 남목 일대의 목장은 그 가운데에서도 규모가 컸다. 기록에 따르면 목장 둘레는 47리에 달했고, 이곳에서 길러진 말만 300여 필에 이르렀다. 동구 마성터널 위 봉대산과 마골산 일대에는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를 맞아 울산박물관에서는 ‘적토마가 온다’ 말띠 해 테마전시가 열리고 있다. ‘울산과 말’, ‘운송수단 말’, ‘신이 된 말’ 등의 전시는 울산의 정체성 속에 깊이 새겨진 말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울산이 대한민국 대표 공업도시로 성장하면서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말을 기르던 곳 인근에 자동차 공장이 들어섰고,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모델인 ‘포니’가 탄생했다. 산업 성장기에 등장한 이 작고 실용적인 ‘조랑말’은 국민들의 일상을 바꿨다. 사람들은 자신의 차를 ‘애마’라 불렀고, 마이카 시대는 이동의 자유와 확장된 여가를 열었다. ‘포니’는 생산된 이듬해, 말을 키워 전국으로 보내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수출선적부두에서 에콰도르로 처음 수출되며, 울산에서 만든 탈것(vehicle)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조랑말에서 ‘포니’로, 군마에서 ‘에쿠스’로 이어지는 이름 속에는 말의 이동과 확장의 상징이 남아 있다. 예부터 말은 늘 속도와 전환, 산업의 변화를 상징해 왔다. 기계 문명이 등장하던 시기, 말은 ‘힘’을 설명하는 기준이었다. 자동차의 출력을 나타내는 ‘마력’은 말 한 마리가 낼 수 있는 힘에서 출발한 단위다. 증기기관을 개량한 제임스 와트는 기계의 성능을 설명하기 위해 말의 힘을 빌렸고, 그 비유는 산업의 언어가 됐다.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자동차의 성능을 ‘마력’으로 설명한다.
육지에서 말이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던 시대, 바다에서는 배가 그 역할을 했다. 울산의 조선소에서 만든 선박의 심장부에도 말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형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을 움직이는 엔진의 출력은 수만 마력에 달한다. 세계 최대급 컨테이너선의 엔진은 10만 마력에 이르는 수준의 힘을 낸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이 거대한 쇳덩이들도, 여전히 말의 힘을 단위로 능력을 설명한다. 남목에서 길러진 말들이 조선을 누볐던 것처럼, 울산에서 건조된 선박들이 전 세계 해상 물류의 중심축을 담당하며, 대양을 누비고 있다.
이후 힘은 제임스 와트의 이름을 딴 물리 단위로 정제됐다. 오늘날 사용하는 와트(W)는 말의 힘을 숫자로 번역해 온 산업의 역사다.
울산에서 말의 힘이 물리적 언어로 처음 번역된 곳은 울산기력발전소다. 1973년 준공된 울산기력 1~3호기는 약 80만 마력에 해당하는 전력을 생산했다. 1981년 4~6호기가 추가로 준공되며 전력생산 규모는 약 240만 마력으로 확대됐다. 이후 2013년과 2022년 가동을 멈출 때까지 약 40여년간, 울산공업단지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며 도시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현재 울산발전본부는 천연가스를 활용한 2000㎿의 발전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마력으로 환산하면 약 280만 마력에 해당하는 힘이다. 숫자는 커졌지만 질문은 여전히 같다. 이 힘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내고, 어디에 쓸 것인가다.
울산은 다시 한번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다. 현재의 노후 복합발전설비 대체 ‘그린1복합 발전’과 ‘울산 신복합’은 각각 900㎿와 500㎿ 규모로, 울산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발전사업이다. 합치면 약 190만 마력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다시 이 도시에 더해진다.
과거의 전환이 산업의 양적 성장을 떠받쳤다면, 지금의 에너지는 지속가능성과 책임을 요구한다. 더 깨끗하게, 더 효율적으로, 더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다. ‘그린1복합 발전’과 ‘울산 신복합’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한 답이다. 같은 전력을 생산하더라도 더 깨끗한 연료인 수소를 사용하며, ‘청정연료 인수기지’ 건설을 통해 공급 안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에너지의 방식을 바꾸는 선택이다.
과거 동구 남목의 말들이 나라를 지켰듯, 오늘날 울산의 산업과 에너지가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가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권명호 한국동서발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