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8장 / 땅을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 (125)

2026-02-03     차형석 기자

송내는 물론이고 마동, 화동, 괴정마을에서 온 백성들은 이 황당한 판결에 어안이 벙벙해서 한동안 말을 잊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사또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말도 안 되는 판결을 하누?”

“그 땅이 봉사 나리의 땅이라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일인데, 어찌 처의 시신을 장사지내지 않고 내다버린 김 초시의 말을 믿는단 말인가?”

“그러게, 김 초시가 후레자식이라는 거 울산땅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사또는 왜 그렇게 판결을 했을까?”

“그동안 사또가 훌륭한 목민관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백성들을 이렇게 실망시켜도 되는가?”

“그러게.”

울산 군수인 사또 김태허는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건 잘못된 판결이다. 그런데 이런 판결을 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김태허 자신이라는 게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목민관의 자세도, 선비의 지조도 다 버린 못난 자신이 죽어서 조상님은 어찌 뵐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미칠 지경이었다. 그날 밤 혼자 술을 마시던 그에게 형방이 다가와서 조용히 여쭈었다.

“사또, 땅을 빼앗긴 그들을 어찌하여 옥에 가두라고 하신 것이옵니까?”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일세. 형방은 땅을 빼앗겨 본 적이 있는가? 당연히 없겠지. 나도 없어. 그렇지만 땅을 빼앗긴 백성들의 그 심정을 나는 아네. 그래서 그들이 분에 못 이겨서 욱하는 심정으로 무슨 일을 저지르지 못하게 잠시 옥에 가둔 것이네. 그 땅은 절대 김 초시의 것이 아니야. 정말로 그 땅이 김 초시의 것이라면 뒷배를 이용해서 부당한 압력을 넣지 않아. 내가 군수직에 연연해서 그런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니야. 지금의 조정 대신들이라면 나를 역적으로 몰아서 죽일 수도 있어. 조선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그들이야. 그냥 그들이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고, 틀리다고 하면 틀린 것이야. 내 생각이나 판단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세상이지.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내 가족과 내 가문이 피해를 입을까 봐 두려워서 목민관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내가 한 거야. 다 내려놓고 훈장이나 하면서 살아야겠네.”

“사또!”

“아무 말도 하지 말게. 부탁이야.”

밤새 술을 마시던 군수는 사직상소를 올리고 다음 날 낙향하였다. 김 군수는 떠나기 전에 옥사로 찾아가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천동과 동무들을 석방시켜 주었다.

평시의 관례대로라면 상위관청인 경상감영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으나, 아직 전란으로 인한 혼란이 채 수습되지 않은 상태라서 그것으로 판결이 확정되었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