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영의 컬러톡!톡!(48)]자연·인공 색채 공존하는 태화강 국가정원
태화강 국가정원은 울산이 산업의 회색을 벗고 생태의 녹색으로 거듭났음을 상징하는 장소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장소 만들기(Placemaking)는 자연 그 자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원의 자연 색채가 도시의 인공 색채와 만나는 접점, 그 경계에서 중첩되는 ‘색채의 리듬’이 시민의 삶과 얼마나 유연하게 공존하느냐가 완성을 위한 핵심조건이다.
도시 공간 중 장소성이 가장 극대화된 사례로 라틴아메리카 건축의 전통적인 ‘안뜰(Courtyard)’을 들 수 있다. 이 안뜰은 집 내부와 외부 거리 사이의 열린 마당으로, 특정한 기능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빛과 그림자, 그리고 그곳을 채우는 색채를 통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머물고 대화하게 만든다. 줄리 베이커(Julie Baker)의 ‘서비스스케이프(Servicescape)’ 이론을 빌려오자면, 안뜰의 색채와 빛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간의 행동을 유도하고 공동체 의식을 길러내는 능동적인 ‘환경 단서(Environmental cues)’로 작동한다.
태화강 국가정원 역시 우리 도시 안에서 이러한 안뜰과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강물과 대숲이 내뿜는 자연의 색채가 도시의 콘크리트 벽면과 만날 때, 그 경계가 대립적 단절이 아닌 부드러운 전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맥락적 색채(Color-in-Context)’의 역할이다. 태화강의 녹색은 고정된 상징이 아니라 주변 건축물, 도로, 시설물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시민의 심리적 안정감을 결정하는 포용적 환경이 돼야 한다.
현재 태화강 국가정원 주변은 각기 다른 색채 언어가 충돌하고 있다. 화려한 간판과 원색적 건물 외벽은 정원의 평온함을 방해하며 시각적 피로를 유발하기도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자연이 돋보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저채도의 완충색’이다. 안뜰에서 강렬한 태양광을 조절하기 위해 벽면 색채를 신중히 선택하듯, 도시의 색채는 국가정원의 신비로운 사계절 색채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여백’이 돼야 한다.
진정한 장소의 정체성은 완벽히 통제된 매끄러운 공간에서 나오지 않는다. 도시의 역사와 장소의 기억들이 묻어난 ‘색의 흔적’들은 인위적인 계획보다 더 깊은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자연과 도심이 만나는 지점에서 색채가 경계를 강조하는 선이 아니라 서로 스며드는 흐름이 될 때, 시민들은 비로소 장소의 정신(Genius Loci)과 교감할 수 있다. 태화강의 녹색이 도시의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번져나가게 하는 것이, 울산이 지향해야 할 색채디자인의 본질이다. 울산의 색채디자인은 ‘무엇을 더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비워낼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신선영 울산대학교 교수·색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