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문화로 시대를 리드하는 공공
공공의 영역은 어떻게 해야 정체되지 않을 수 있을까? 매년 연초가 되면 필자가 몸담고 있는 재단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방심하는 사이 연례행사로 전락하기 쉬운 공공의 문화사업을 어떻게 주민 삶의 살아 있는 일부로 만들 수 있을지, 작년과는 다른 모습으로, 주민들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울주문화재단에서 생활문화팀장으로 일하는 것은, 이전에 13년간 해온 뮤지컬 제작감독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매일 밤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최상의 공연을 올리기 위해 쏟아부었던 디테일을 이제는 매년 수만 명의 주민들을 위해 ‘살아 있는 사업 구조’를 설계하는 데 쏟는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울주문화배달은 515회에 걸쳐 약 9만 명의 관객을 만났다. 매번 다른 복지시설과 기업체, 주민행사 현장을 찾아가 다양한 예술인들과 관객을 연결해 왔다. 울주동네축제 역시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태어났다. 각 읍·면의 문화지기들이 어떤 문화자원을 소재로, 어떤 생활문화인과 주민들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달라진다. 해를 거듭할수록 경쟁률이 높아지는 울주동네버스킹 또한 선정된 동호회와 그들이 선택한 버스킹 장소에 따라 지역 문화의 결이 달라진다.
이처럼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공공의 역할은 분명하다. 다양한 주민들이 생활문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섬세한 사업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문화이음1번지는 12개 읍·면의 민간문화공간을 ‘문화이음터’로 명명하고, 참여 공간의 홍보 부담을 덜기 위해 ‘문화이음 상생주간’을 새롭게 도입하고자 한다.
울주문화배달은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해외 공연을 생활권으로 배달해 새로운 자극을 더할 예정이다. 가능하다면, 동네문화지기와 생활문화 동호인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울주형 생활문화기획자’ 양성도 추진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공공의 틀 안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현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며 섬세한 기획을 펼치기에는 구조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이는 특정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 현장 전반이 함께 마주하고 있는 과제일 것이다. 공공의 영역은 눈앞의 성과보다 더 길고 넓은 비전을 바탕으로 내일을 설계하고 오늘을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축적된 행정의 방식 속에서 그런 유연성을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공공은 주민들의 기대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결국 공공의 영역이 정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를 먼발치에서 관망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역의 학교와 주민, 다양한 문화 주체들이 함께 고민하고 연결될 때 변화는 시작된다. 무엇보다 변화의 속도를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공공이 기존의 틀을 유연하게 조정해 나갈 때, 비로소 문화가 스며드는 일상을 만날 수 있다.
김잔디 울주문화재단 생활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