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열의 고용노동이슈(33)]벤처·스타트업 근로시간 혁신, 규제 논쟁 넘어서야

2026-02-06     경상일보

벤처·스타트업의 근로시간 문제를 두고 우리는 너무 오래 같은 질문만 반복해왔다. 주 52시간제를 지킬 것인가, 완화할 것인가. 그러나 이 질문은 이제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기술 변화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고, 인력은 부족하며, 혁신의 실패 비용은 커졌다. 그럼에도 근로시간 논의는 여전히 제조업 중심의 규제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 찬반이 아니라, 근로시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859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151시간 길다. 반면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7.5달러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는 한국이 덜 일해서 성과가 낮은 나라가 아니라, 오래 일하지만 성과가 낮은 구조를 가진 나라임을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근로시간을 늘릴 것인가, 줄일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논쟁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다. 중요한 것은 같은 시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어떤 성과를 만들어 내느냐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제는 장시간 노동 관행을 억제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실제로 주 53시간 이상 장시간 근로 비중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감소했다. 그러나 더 이상 장시간 근로 문제가 중소기업이나 특정 업종만의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최근 통계를 보면 주 53시간 이상 근로 비중은 300인 미만 기업과 대기업 간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대기업에서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41~52시간 구간의 비중이 더 높다. 중소기업의 위법 문제라는 통념만으로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제의 본질은 제도의 경직성에 있다. AI, 플랫폼, 게임, 콘텐츠, 바이오 등 벤처·스타트업의 핵심 산업은 프로젝트 중심, 성과 중심으로 움직인다. 일정 기간 고강도의 몰입이 필요하고, 이후 회복과 재정비의 시간이 뒤따르는 구조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이러한 집중과 회복의 리듬을 제도적으로 흡수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연구개발 현장에서는 제도를 지키기 위해 형식적 근로시간 관리에 매달리거나, 반대로 제도를 우회하는 관행이 반복된다.

최근 논의되는 특별연장근로 확대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혁신형 중소기업 연구원의 다수가 정당한 보상이 전제된다면 주 52시간 초과 근무도 가능하다고 응답한 조사 결과는, 근로자 보호가 반드시 시간 상한의 강화와 동일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다만 특별연장근로가 혁신을 위한 한시적 예외가 아니라, 인력 부족을 메우는 상시적 운영 수단으로 굳어질 경우 문제는 더 커질 수 있다.

해외 사례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다. 독일은 하루 근로시간 상한을 두되, 평균 기준을 통해 과로의 누적을 엄격히 관리한다. 프랑스는 고도 전문직에 대해 연간 근무일수를 기준으로 하면서도 휴식권과 건강권을 강하게 결합한다. 일본 역시 월·연 단위 총량 관리로 특정 시기의 과로가 구조화되지 않도록 설계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유연성은 허용되지만, 반드시 평균 관리, 휴식, 기록, 사후 감독과 함께 간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근로시간 유연화를 논의할 때도 같은 원칙이 필요하다. 단순히 허용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는 사회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참조기간 평균 관리, 11시간 연속휴식, 누적 상한, 건강권 보호, 성과와 이직률에 대한 사후 평가가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유연화는 곧바로 규제 완화가 과로 조장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선택적·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도 제도 부족이 아니라 운영 역량의 부재에 있다. 근로시간 관리 시스템, 노무 리스크에 대한 예측 가능성, 성과 중심 인사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만 늘려도 현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유연근로는 법 조항이 아니라, 운영 규칙과 인프라의 문제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은 근로시간의 투명성이다. 근로시간 기록 의무가 불명확한 구조에서는 포괄임금제 오남용 논란이 반복되고, 원·하청 구조 속에서 근로시간 부담이 협력 중소기업과 개인에게 전가된다. 근로시간 기록은 행정 규제가 아니라 노사 신뢰와 분쟁 예방의 인프라다.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논의에 근로시간 이슈를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벤처·스타트업의 근로시간 문제는 더 이상 노동 규제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혁신의 지속 가능성, 인재 유치, 생산성 구조, 그리고 사회적 신뢰의 문제다. 시간을 줄이느냐 늘리느냐의 논쟁을 넘어, 어떤 운영체계가 혁신과 보호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가를 묻지 않으면 답은 나오지 않는다.

유연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무조건적이어서는 안 된다. 벤처·스타트업의 근로시간 논의는 예외를 허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노동정책이 성숙한 운영국가로 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이제 규제 찬반을 넘어, 운영의 문제로 논쟁을 전환해야 할 때다.

윤동열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한국생산성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