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이상국 ‘매화 생각’

2026-02-09     차형석 기자

겨우내 그는 해바라기 하는
달동네 아이들을 생각했던 것이다

담장을 기어오르다 멈춰선 담쟁이의
시뻘건 손을 생각했던 것이다

붕어빵을 사 들고 얼어붙은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아버지들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냥 있어선 안 된다고, 누군가 먼저 가
봄이 오는 걸 알려야 한다고

어느 날 눈길을 뚫고 달려왔던 것이다
그 생각만 했던 것이다


서둘러 봄소식 전하고픈 간절함

이 추위 속에서도 통도사 자장암 앞의 홍매화가 첫 꽃을 터뜨렸다고 지인이 사진을 보내왔다. 입춘 지나니 겨울의 종주먹이 조금 느슨해졌나. 이르게 핀 매화를 보니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가던 어린 시절 하굣길이 떠오른다. 일등 했다고, 상 받았다고, 이 기쁜 소식을 어서 알려야 한다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마루로 뛰어올라 문을 열어젖히던.

이 시에서도 매화는 고아한 향기나 고고한 절개를 지닌 사군자의 하나가 아니라, 봄이 오고 있다는 걸 빨리 전하고 싶어 안달하는 ‘그’로 나온다.

옹기종기 모여 서서 해바라기 하는 달동네 아이들, 기어오르다 멈춰 선 담쟁이의 손, 얼어붙은 골목길을 지나 귀가하는 아버지들처럼 세상의 모든 고단하고 힘들고 소외된 이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봄이 오고 있다는, 곧 추위는 물러가고 날이 풀리리라는, 바람이 노곤해지고 꽃이 피리라는 희망의 전언.

그러니까 매화의 개화는 그저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빨리 봄소식을 전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다. 아, 그 마음이 얼마나 절실하고 애틋한지 매화는 ‘그 생각만’ 하며 눈길을 뚫고 온다. 추위를 뿌리치며 달려온다. 서둘러 오느라 그 발은 맨발일 것이다. 트고 긁혔지만 벅차게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