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 칼럼]대통령의 ‘깨알지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문제가 정부의 정책의제(policy agenda)로 설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정부가 이를 문제로 받아들여 주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요구가 정부에 의해 수용되기는 쉽지 않다. 이를 누구보다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대통령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한마디만 하면 그 즉시 정책의제가 된다. 그만큼 대통령의 말은 권위가 있고 파급효과가 크다.
최근 대통령은 공개회의나 사회관계망을 통해 각종 이슈들을 제기하고 있다. 탈모제의 건보부담, 고가의 생리대, 공공기관의 출퇴근 버스 및 구내식당 운영, 설탕세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의 문제제기는 그냥 던져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부처의 최우선 정책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모르긴 해도 관련 부처에서는 대통령이 제기한 문제에 대응하고자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제기한 이슈는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빨리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로 격상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대통령이 제기하는 이슈들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건강증진을 위해 설탕 섭취를 줄이고, 저가 생리대를 보급하여 저소득층의 고충을 덜어주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통령의 ‘깨알지시’는 상당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우선 대통령의 지시보다 더 중요한 사안들이 방치될 수 있다. 예컨대 탈모제보다 중증환자나 희귀난치병 환자에 대한 건보적용 문제가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
또 관료사회의 특성상 대통령의 계속되는 세부지시는 관료들을 경직시킨다. 부처가 다루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서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가 된다. 급기야 대통령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손을 놓고 기다리게 된다. 국민들보다는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 야기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책이 대통령이 언급한 범위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부처 관료들의 정책전문성이나 자율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결국 충분한 논의나 검토 없이 대통령의 지시대로 정책이 결정되는 상황이 초래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이슈제기가 부처를 거쳐서 이뤄지는 것이 좋다. 공개적으로 불쑥 밝히기 전에 해당부처의 내부적인 숙의를 거쳐 정책의 얼개를 만든 다음 공표하는 것이다. 그것도 장관이나 실무국장 선에서 발표하도록 하고, 대통령은 이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을 취하는 것이 부처에 책임성과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할 것이다.
한편 최근 대통령이 SNS로 제기하는 이슈에 대해서 반론이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바로 반박하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 정책이 결정되기 전에 대통령이 자기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애당초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주지하다시피 정책에는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있어서 얼마든지 다른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의견들을 반영하는 것이 ‘정책의 정석’이다. 대통령이 험한 언어로 반격을 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SNS를 통해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의 장점일 것이다. ‘내 생각과 다른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은 민주적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SNS 호통‘이 되풀이 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악이라고 언급한 참주정(僭主政)으로 비칠 우려마저 있다. 민주적 소통의 최첨단 매체를 비민주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관심은 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이슈에 집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공기관 통근버스 금지보다는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고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다. 어떻게 보면 최근 대통령이 언급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지엽적인 이슈들이다. 우리 사회에는 더욱 해결이 어려운 이른바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들이 도사리고 있다. 훨씬 더 복잡하고 해결책이 마땅치 않아서 국민들의 고통도 그만큼 큰 문제들이다. 깨알지시도 좋지만 보다 큰 문제, 대통령 아니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집중해 주기 바란다.
정준금 울산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