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다시 빛나는 매곡천, 울산 북구의 젊음과 낭만을 깨우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름밤 울산 북구 매곡천 일대는 음악과 웃음으로 가득했다. 산책로를 따라 은은한 조명이 반짝이고, 곳곳에서 청년들이 기타와 마이크를 들고 버스킹 공연을 펼치던 모습이 선하다. 가족과 연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선율에 귀를 기울였고, 아이들은 분수 곁에서 물장구치며 웃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벤치에 앉아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곤 했다. 매곡천의 밤은 남녀노소 모두가 어울려 낭만과 활기를 누리던 소중한 시민 쉼터이자, 북구만의 독특한 청년 문화공간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 이후 이런 풍경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공연과 모임이 중단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고, 매곡천의 밤에는 무거운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형형색색 빛을 뽐내던 산책로 조명은 한동안 꺼져 있었고, 청년들의 열정이 숨 쉬던 야외 무대에는 정적만 흘렀다. 일상이 회복된 지금, 소규모 공연이 다시 열리고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예전의 활력을 완전히 회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서 우리는 냉정하게 북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울산 북구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이다. 전국 시·군·구 중 주민 소득수준 1위, 평균 연령이 낮은 ‘젊은 도시’ 전국 2위라는 화려한 지표를 자랑한다. 주변에는 5000여개의 협력업체가 밀집해 있으며, 매일 8만명에 달하는 근로자가 이곳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주역이자, 활발한 소비와 문화 향유의 주체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이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즐길 수 있는 문화 인프라와 밤문화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 잘 벌고 가장 젊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즐길 곳이 없어 타 지역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일자리 때문에 이곳에 머물지만,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지 못해 인근 대도시나 타 자치구로 청년들이 빠져나가는 현상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사람과 산업’은 있지만 ‘문화와 낭만’이 부재한 도시는 지속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매곡천을 다시 시민의 품으로, 특히 청년들의 문화 해방구로 되돌려주었으면 한다. 우리에겐 이미 팬데믹 이전 매곡천을 문화공간으로 성공시킨 소중한 경험이 있다. 이 자산을 바탕으로 문화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새 활력을 불어넣는다면, 매곡천은 다시금 북구의 젊음과 열정이 모이는 상징적 무대가 될 것이다.
우선 하드웨어의 보강이 시급하다. 낡거나 고장 난 조명과 음향 장비를 전면 점검하여 야간 경관의 불을 밝히고, 버스커와 지역 예술인들이 안정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야외 상설 무대를 구축하자. 기존 산책로를 단순히 걷는 길을 넘어 ‘공연하기 좋은 공간’으로 개선해야 한다. 나아가 계절별 음악회, 야외 영화 상영, 청년 마켓 등 다채로운 콘텐츠를 입혀 언제 가도 즐길 거리가 넘치는 ‘문화 하천’으로 조성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공공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관협력이 필수적이다. 지자체는 행정적 뒷받침과 예산 지원으로 기반을 조성하고, 지역 기업들은 재정적 후원, 장비 지원 등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힘을 보태야 한다.
또한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주민 동아리가 기획부터 운영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주민 주도형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청년 예술가들에게는 공연의 기회를, 기업에는 지역 상생의 모델을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얘기다.
매곡천의 재도약은 단순히 조명 몇 개를 더 켜는 일이 아니다. 이는 코로나와 경기침체로 지친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주고, 떠나가는 청년들에게 “우리 지역에도 당신들이 꿈꾸던 낭만과 즐거움이 있다”는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다. 8만 근로자와 젊은 세대가 매곡천의 물빛 아래서 하루의 피로를 씻고 내일을 꿈꿀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북구의 진정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매곡천의 밤하늘이 다시금 음악과 빛으로 수놓아지길 고대한다. 그 불빛은 청년들의 열정을 비추는 등불이 되고, 아이들에게는 꿈의 놀이터를, 어른들에게는 여유로운 쉼표를 선사할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의 관심과 열정을 모아야 할 때다. 매곡천이 다시 빛을 되찾아 울산 북구의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문화적 상징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이정협 서호홀딩스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