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저장강박 위기가구 사회적 개입 필요하다
지난 연말 울산 남구의 한 주택가에서 발생한 화재로 주민 1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언론에 보도된 화재 현장 사진은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쓰레기 더미가 산처럼 쌓여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쓰레기를 치워가며 화마와 싸우느라 화재 진압에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피해 주민은 평소에도 각종 옷가지와 물품들을 집 안에다 쌓아두는 등 저장강박으로 의심되는 모습을 보여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행정복지센터에서 정리를 권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제도적으로 강제할 방법은 없어 적극 개입은 불가능했다.
현행법상 행정 당국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근거 법규가 없어 타인이 보기엔 쓰레기 더미에 불과할지라도 개인이 사유 재산이라고 주장하면 손을 쓸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악취와 해충 발생은 물론, 화재 위험과 위생 문제로 이웃 간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미국 정신의학회가 펴내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은 2013년부터 진단 목록에 저장강박(의학용어로는 저장장애:Hoarding disorder)을 별도 카테고리로 추가했다. 저장강박이란 물건의 실제 가치와 관계없이 과도하게 모으거나 버리지 못해 삶의 공간이 엉망이 되고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저장강박에 관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1인 가구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사회적 고립과 우울감이 저장강박의 핵심 원인 중 하나임을 시사한다. 문제는 당사자들이 이것을 외부 도움이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하지 않고 숨기기에 급급해 도움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적절한 개입이 없으면 증상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저장강박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둘 수 없다. 악취, 공중보건, 화재 위험 등 사회적 재난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사회 문제라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사고에 의한 인명 피해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수많은 주민이 추위 속에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공동주택이 보편적인 주거 양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부주의나 일탈이 다수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경우, 정부가 대중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 개입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법률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는 소방법을 활용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기적인 소방 안전 점검을 통해 종이, 상자, 의류 등 가연물을 과다하게 쌓아두고 있는지, 복도나 출입문 등 유사시 피난 경로에 방해가 되지 않는지 등을 평가해 반복적으로 위반하거나 소방 당국의 조치에 따르지 않는 경우, 벌금을 부과하거나 거주 금지 명령 등 사실상 강제 퇴거에 준하는 제재를 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22년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아파트 등 공동주택도 소방시설 정기 점검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체크리스트에 세대 내 가연성 물품 적치에 관한 내용은 빠져있다. 공동주택 소방 점검은 공용부와 세대부로 구분되는데 세대부는 사적공간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거주자가 자체 점검표를 작성해 제출하는 방법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이 자체 점검표에 캐나다의 사례를 참고해 세대 내 가연물 과다 적치 여부와 유사시 소방관 진입로 및 탈출 통로 확보를 위한 공간 관리 의무 등을 명시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장강박 의심가구가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대상자 발굴부터 청소와 방역,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전문 업체와 자원봉사자, 사례 관리 전문가 등이 협력하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끝으로 지속적인 사후관리 모니터링도 뒤따라야 한다. 민간 자원을 연계하는 등 주기적인 방문을 통해 안부 묻기, 정기적인 정리 정돈 교육이나 취미 활동을 지원해 물건이 아닌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저장강박 의심 가구가 늘고 화재의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 사건처럼 저장강박으로 인해 소중한 생명이 사라지는 아픔이 재발하지 않도록 행정의 적극적인 개입이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바란다.
최신성 울산 남구의회 의회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