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9장 / 광명세상을 꿈꾸는 백성들 (130)
강목은 멍한 얼굴로 딴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천동의 얼굴에 손바닥을 흔들어 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천동의 귀에다 입을 가까이 대고 장난질을 좀 쳐 보았다.
“관군이 나타났다. 빨리 피해.”
“뭐, 뭐라고? 어디야?”
“호랑이도 무서워하지 않는 천하의 천동이가 관군은 무서워하네?”
강목과 대식은 재미있다는 듯이 큰 소리로 웃었다.
“야, 장난할 게 따로 있지. 재수 없는 관군이니?”
“관군이 어때서? 너도 한때 관군이었잖아?”
“그거야…. 그건 그렇고 혼선이 있으면 같은 장소에 모이는 게 힘들어지니까 내가 부탁한 대로 마을 사람들에게 잘 좀 전달해줘.”
“알았어.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래, 나는 집에 가봐야 하니까 이틀 뒤에 보자.”
천동은 동무들과 헤어진 후에 곧바로 집으로 갔다. 옥화는 그가 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잘 다녀왔어요?”
“네, 마나님.”
천동의 장난스런 대꾸에 그녀는 살짝 눈을 홀기는 시늉을 했다. 그런 처를 쳐다보며 천동은 새로운 곳에 가서 반드시 잘 살아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임신한 그녀가 타고 갈 나귀도 구해 놓았다. 내일은 미리 이삿짐의 일부를 비학산의 동굴에 가져다 놓고, 나머지는 이틀 뒤에 그가 지고 가면 된다. 이주지에 대한 기대도 크지만, 그곳에서 탈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또한 크다. 웬만한 건 그곳에서 자급자족하고 외부인과의 접촉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행여 누군가 마을 사람들을 도적이나 역당으로 몰아서 관아에 신고하는 날에는 모든 게 끝장나기 때문이다.
다음 날 부지런히 비학산을 다녀온 천동은 정든 땅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뒤척였다. 처인 옥화도 잠을 설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이주지로 출발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 천동과 옥화는 송내에서의 마지막 밤을 두 손 꼭 잡고 보냈다.
천동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하늘을 보았다. 다행히 날씨는 맑을 것 같아 보였다. 험한 산길을 택해서 가야 하는데, 눈이라도 오면 큰 곤욕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다행히 비록 춥기는 하지만 살짝 얼음이 얼 정도라서 걷기에는 오히려 더 편한 그런 날씨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지만 서둘러서 출발하였다. 동대산 서쪽 자락의 마을 외곽으로 이동하다가 속심이마을 앞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섶다리를 건너서 관문성을 따라서 두동 방면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속시미 앞의 쇠내에는 겨울이면 찾아오는 오리 떼들이 냇물에 새까맣게 앉아 있었다. 물고기가 유난히 많은 쇠내의 물비린내를 맡은 청둥오리들이 떼로 몰려와서 잔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연과 새들은 인간이 치르는 전쟁과는 무관한 듯이 보였다. 천동은 허겁지겁 고향을 떠나는 무리들에게서 벗어나 그들 속에서 노니는 한 마리 새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