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AI는 일자리를 빼앗는가
1811년, 영국 노팅엄의 직조공들이 자동 방직기를 부쉈다. 러다이트라 불린 이들의 우려와 달리, 방직기는 오히려 새로운 고용 생태계를 열었고, 컴퓨터는 ‘계산원’이라는 직업을 없앴지만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대륙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2022년 챗GPT의 등장과 함께 우리는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섰다. “이번에도 역사가 반복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과거의 자동화가 공장 노동자의 ‘손’을 대체했다면, 지금의 AI는 사무실 전문가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프로그래머 한때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던 고학력·고소득 전문직의 업무가 AI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과거에 없던 무기가 있다. 바로 데이터다. 2023~2026년에 걸쳐 MIT, NBER, OECD에서 축적된 실증 연구들은 이 격변을 막연한 미래학이 아닌 숫자의 언어로 보여준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첫 번째 사실은 의외로 희망적이다. MIT의 브린욜프슨 교수 팀은 2023년 미국 포춘 500대 기업 상담원 5172명을 대상으로 AI 보조 도구의 효과를 실험했다. 평균 생산성은 14% 올랐지만, 핵심은 그 분포에 있었다. 상위 20% 베테랑들은 거의 변화가 없었던 반면, 하위 20% 신입들은 생산성이 34%나 치솟았다. AI는 ‘슈퍼맨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슈퍼맨으로’ 만드는 도구였다. 그러나 동전을 뒤집으면 풍경이 달라진다. “평범한 사람이 전문가 수준이 된다”는 말은 곧 “전문가의 희소가치가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신호는 고용 데이터에서 나온다. 브린욜프슨 팀이 2025년 미국 최대 급여 처리 업체 ADP의 채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에서 22~25세 초기 경력자 채용이 다른 직군 대비 16%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인력을 줄이는 방식이 ‘기존 직원 해고’가 아닌 ‘신입을 뽑지 않는’ 조용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 신입이 맡던 자료 조사, 초안 작성, 간단한 코딩을 이제 AI가 대신한다. 경력을 쌓으려면 일자리가 필요하고, 일자리를 얻으려면 경력이 필요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첫 번째 칸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경력의 선순환이 끊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시적 전망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가 향후 10년간 전 세계 GDP를 약 7% 추가 성장시킬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MIT의 아세모글루 교수는 AI가 실질적으로 대체·보완할 수 있는 경제 과업은 전체의 4.6%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AI가 가져올 연간 생산성 증가는 0.06%p 골드만삭스 예측의 약 20분의 1이다. 그가 특히 경고하는 것은 ‘어정쩡한 자동화’다. 챗봇이 상담원을 대체하지만 서비스 품질은 떨어지고, 기업은 인건비를 아꼈지만 진정한 생산성은 오르지 않는 ‘나쁜 균형’이다. 기술은 조건이지, 그 자체가 답은 아니다.
이 논의를 한국이라는 맥락 위에 올려놓으면 풍경이 또 한 번 달라진다. 한국은 로봇 밀도 세계 1위, ICT 인프라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전체 고용의 80% 이상을 떠받치는 중소기업은 투자 여력도 전문 인력도 부족하다. 여기에 역설적인 변수가 더해진다. 한국은 수년째 세계 최저 수준의 합계출산율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력이 넘쳐나는 나라에서 AI는 ‘일자리를 빼앗는 위협’이지만, 일할 사람이 부족한 나라에서 AI는 ‘비어가는 자리를 메우는 구원투수’가 된다. 한국에서 AI 도입은 단순한 효율화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신입 채용 감소’ 현상이 한국 특유의 경직된 공채 문화, ‘경력직 우대’ 관행과 결합하면 충격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클 수 있다. 경력을 쌓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청년 세대가 고착된다면, 소비 위축과 혁신 역량 저하라는 악순환이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근본부터 위협할 것이다.
AI는 노동의 종말을 가져오지 않는다. 대신 ‘과업의 대(大)재배치’를 강요한다. 그 갈림길을 결정하는 것은 AI의 성능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의 선택이다. 교육은 암기 대신 AI와 협업하는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야 하고, 사회 안전망은 사라지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밀려난 사람이 새로운 영역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공포도, 근거 없는 낙관도 아니다. 냉철한 데이터에 기반한 전략적 대응, 그리고 AI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려는 자세 바로 그것이다.
이사야 UNIST 경영과학부 교수 서울대 중소벤처기업정책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