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민의 불역유행(不易流行)(32)]책 읽는 사람들 가득한 그 시절이 그립다
“차에서는 제발 책 보지 마라.”하는 소리를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귀따갑도록 들었다. 안경 신세를 지고 있던 아들의 눈이 더 나빠질까 염려하는 하소연이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더 큰 도시에서 꿈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부산으로 유학을 떠났다. 어린 나이에 쉽지 않았던 선택이었고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고3 때를 제외하고 주말마다 울산과 부산을 왔다 갔다 했던 고난의 강행군을 용케 버텨낸 건 지금 생각해 보아도 정말 대견스럽다.
그 시절 3시간의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책이라는 고마운 친구가 항상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매번 바뀌었고, 때로는 교과서이거나 참고서인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삼국지 같은 대하소설이거나 톨스토이 저서 같은 고전문학이었다.
토요일 귀향길엔 흥이 돋아 콧노래가 절로 났고, 일요일 점심 이후부터는 가기 싫은 마음에 불안감이 어김없이 밀려왔다. 매주 일요일 오후 집을 나서는 시간은 조금씩 늦춰졌고,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당대 최고의 인기 드라마였던 ‘수사반장’이 종료되는 무렵으로 고정되었다. 시외버스 막차와 하숙집까지의 시내버스 운행 시간, 그리고 1982년 초까지 시행된 야간 통행금지 등 제한요인을 감안할 때 누릴 수 있는 최대치였다.
그때는 태화교 건너편에 자리 잡았던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늘 부모님이 바래다주셨는데 버스를 타자마자 책을 꺼내든 아들의 모습을 보면 책 대신 눈 붙이라는 손짓을 보내셨다. 석별의 아쉬움으로 생기는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려 고개를 숙여 책 읽는 척해 보았자 부르릉 시동 소리엔 기린 목이 되어 두리번거렸다. 여전히 손을 흔들고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 모습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한참 동안 터미널 부루스는 계속되었다. 그래서일까? 그날도 오늘도 영업 중인 추억의 ‘터미널식당’을 지금도 자주 찾곤 한다. 250여 년 전 시작된 산업혁명은 디지털전환이라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졌고 앞으로 얼마 되지 않아 인류는 완성형 챗GPT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이끄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명 세계로 진입할 것이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2010년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은 효율성과 편의성 측면에서는 분명 큰 이익을 가져왔지만, 인간 사회의 로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잃은 것도 적지 않다. 그중 가장 아쉬운 점은 버스나 전철 안에서 책을 보던 그 많던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외버스를 타면 노인분들과 헤드폰 음악 감상을 즐기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저마다의 손에는 책 한 권 혹은 한 뭉치 신문잡지가 들려있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긴 여정이라면 소설책 반 권 정도는 홀딱 읽었다.
서울의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뿐만 아니라 지방 대학가 서점 어디든 북적거렸다. 그곳은 또한 만남의 광장이기도 했다. 정말 그랬을까? 싶은 풍경이지만 지하철 푸시맨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평일 출퇴근 시간대, 조금의 틈과 공간이라도 생기면 몸을 비집어 다시 책을 펼치던 우리였다. 한가한 평일 오전 대중교통에 오르면, 누군가는 책을 읽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창밖을 내다보며 방금 읽은 문장을 음미하고 있었다. 책 읽는 사람들이 가득한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고, 다시 보고 싶다.
직업이 외교관이라 해외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비행기 일정이 생기면 외교부 청사 인근의 대형서점을 찾곤 했다. 여유가 없으면 공항 내 서점에 들러 두 세 권의 그달 최신 베스트셀러를 골랐고 비행 중에 다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선후배들에게 주기 위한 선물용이었지만 전달 시기를 며칠 늦춘 때도 많았다. 어릴 적부터 고전읽기 대회를 통해 다져온 독서 실력이 다독을 가능하게 했지만, 어느새 몇 달이 지나면 그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했던 조그만 노력이 책 내용을 메모하는 것이었다. 2012년 1월부터 시작된 취미는 2021년 4월까지 10년간 이어졌다. 2011년도 정덕구 교수 작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이 그 첫째였고, 박완서 선생의 2004년 작 <그 남자의 집>이 86번째 마지막이었다. 중국의 본심을 이성적 친구이면서 감성적 타인으로 분석했고 체면(面子)을 중시하는 중국문화를 존중해 줄 것과, 미래지향 파트너인 중국으로서는 찐한 교감(deep skinship)이 넘치는 미래의 한국 대통령을 기다린다고 되어있다. 박완서의 책에서는 “나는 다시 한번 구슬 같은 처녀이고 싶었다”는 소절과 함께 훼손되지 않은 자아로서의 나로 남기를 절규하는 것이라는 부연이 달려있다.
그 외에도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주치의 Li Zhishi 박사가 그린 <모택동의 일생(The Personal Life of Mao)>에는 모 주석은 “인근 국가와 전쟁할 때는 먼 국가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략에 따라 소련과의 국경분쟁 위기 가운데 의도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본디 중국은 미국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대형국가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보다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접근했다고 적혀있다.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Brzezinski 박사의 <전략적사고(Strategic Vision)>에서는 국가부채, 금융시스템의 오류, 심해지는 빈부격차, 노후화된 사회기반시설, 부실한 공교육, 당파 갈등으로 마비된 정치 등 미국이 처한 6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유럽을 상대로는 촉진자이자 보증자 역할로 더 큰 통합을 유도하고 아시아에서는 균형자와 협력자로서 모범을 보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수긍이 간다. 병오년 새해다짐이 하나 생겼다. 앞으로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다시 책을 꺼내 읽고, 그 여운을 적어 보리라.
박철민 울산대 교수 전 울산시 국제관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