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정우영 ‘ 눈길-설날 아침’
발자국은 나를 떠나
저 너머로 뒷걸음쳐 갔으나,
차마 이별을 고하진 못하고 되돌아와
다시 내 발밑을 받친다.
발자국이 없으면 어쩔 뻔했나.
내 삶을 부양한 것은 저 수많은 발자국들.
깊이 패었거나 얇게 걸쳤거나.
나를 지탱한 발자국들 모여
낡은 나를 뿌듯하게 견딘다.
얼마나 새롭냐는 듯이
마치 처음 뵙는다는 듯이.
나를 일으키는 것은 지나온 고통의 시간
설날 아침의 소란과 얼음이 녹는다는 우수(雨水)도 지나간 때 이 시를 읽는다. 축제는 끝났지만,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남긴 비루하고도 숭고한 발자국들이기 때문이다.
발자국이 뒷걸음쳐 ‘나’를 떠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것은 뒤로 멀어지는 과거의 행적일 것이다.
과거는 현재의 나를 단단히 받치는 토대가 된다. 아니, 어쩌면 뒷걸음치는 발자국은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일 수도 있겠다. 고통을 외면하고 싶었던 마음은 그러나 나에 대한 연민으로 결국 발길을 되돌린다.
그 발자국들이 내 삶을 부양한다. 가장 아래 있는 발보다 더 밑에 있는 발자국이. 흔히 내가 내 삶을 끌고 간다고 생각하지만, 시인은 오히려 우리가 남긴 고통과 기쁨의 흔적들이 거꾸로 우리를 살리고 지탱해 주었다고 고백한다.
‘낡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지나온 고통의 시간. 지나간 시간이 현재의 나를 응원하고 위로한다.
이 시의 백미는 마지막 구절이다. 나를 버티게 하는 발자국의 힘을 깨닫는 순간 과거의 나는 사라지고 새로운 나로 거듭난다. 눈밭에 닿는 첫 햇살처럼 싱싱한 저 신생(新生)의 얼굴로.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