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고립의 시간, 도시의 질문이 되다

2026-02-24     주하연 기자

“울산에 1만명 안팎의 고립·은둔 청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획을 시작하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숫자다. 전국 조사에서 전체 청년 인구의 약 5%가 사회적 고립·은둔 상태로 분류됐고, 그 비율을 울산 청년 인구에 적용해 추산한 수치다. 그러나 취재를 거듭할수록 이 숫자는 확신이라기보다 질문에 가까워졌다. 우리는 과연 이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는 이미 고립·은둔 청년 문제가 사회적 현상으로 드러났지만, 지역으로 내려오면 통계는 흐릿해진다. 행정 데이터 어디에도 ‘고립’과 ‘은둔’은 또렷한 항목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숫자로 포착되지 않는 사이, 청년들은 각자의 방 안에서 시간을 견디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례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그들은 사회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반복된 실패 끝에 잠시 멈춰 선 것뿐이라고. 집 앞 버스정류장까지 나가는 일, 센터에 전화 한 통을 거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하루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는 도전이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일상이, 어떤 청년에게는 넘어야 할 ‘관문’이 된다.

울산시청년미래센터가 관리 중인 100여명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센터는 속도보다 과정을, 취업이라는 결과보다 재고립을 막는 안정성을 강조한다. 숫자를 빠르게 늘리기보다, 연결된 한 사람을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선택이다. 이는 한정된 인력과 예산 속에서 나온 현실적인 판단이지만, 동시에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숙제로 남는다.

공동생활가정 역시 인상적이었다. 함께 먹고 자며 생활 리듬을 되찾는 실험. 혼자 두지 않는 구조가 회복의 전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기회 또한 문을 두드린 이들에게만 닿는다. 여전히 방 안에 머무는 청년들에게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먼저 손을 내밀 것인가.

고립·은둔 청년 문제는 단순한 복지 의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지향하는지 묻는 질문이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회인가. 아니면 속도와 성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도시인가.

1만명이라는 추정치는 경고에 가깝다. 아직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청년들이 그만큼 존재할 수 있다는 신호다. 이들을 특수한 집단으로 구분하는 순간, 문제는 다시 보이지 않게 된다.

보이지 않는 청년을 드러내는 일은 통계 작성에서 끝나지 않는다. 일상의 시선, 정책의 설계, 지역사회의 태도가 함께 바뀔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제 질문은 남았다. 우리는 이 1만명의 이름을 제대로 부를 준비가 돼 있는가.

주하연 사회문화부 기자 joohy@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