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칼럼]지역 성장의 새 공식을 쓸 기회다

2026-02-24     경상일보

“북(北)평양 남(南)진주.” ‘천년의 도시’로 불리는 경남 진주는 한때 이런 도시였다. 진주는 지형·역사·문화적 측면에서 북한 평양과 닮은 점이 참 많다. 당장 평양 대동강 변 금수산 모란봉 절벽에 부벽루가 있다면, 진주성 남강 바위 절벽 위에는 촉석루가 있다. 이런 진주가 속절없이 쇠락해 가는가 싶더니 혁신도시로 활기를 되찾고, 사천의 우주청과 KAI 등을 활용해 우주·항공·국방산업의 전략도시를 꿈꾼다.

한국의 경제 기적을 일으킨 동력인 ‘기업가 정신’의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꼭 만나는 두 도시가 있다. 진주와 울산이다. 진주는 LG, 삼성, 효성 창업가와, 울산은 현대, SK, 롯데 창업가와 각각 연결되어 있다. 부·울·경에 소재한 두 도시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주력산업의 원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도시가 함께 미래를 꿈꿀 기회가 찾아왔다.

경남은 경상대학교라는 전통을 자랑하는 지방거점국립대학이 있지만, 미래산업을 제대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혁신생태계의 핵심적 인프라인 연구할 수 있는 대학과 고급인재 확충이 절실하다. 드디어 돌파구가 열렸다. 정부가 부·울·경을 묶은 동남권 등 초광역권을 대상으로 지역성장을 촉진하겠다는 정책 기조를 선언하면서다.

울산에 위치한 UNIST가 설립 취지대로 동남권의 첨단기술 연구와 고급인재 양성의 플랫폼으로 그 역할을 해주면, 경남으로서는 기다리던 지원군이 생기는 셈이다. UNIST는 우주·항공·국방 등 극한 환경에 활용할 수 있는 소재, 에너지, 인공지능(AI) 등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경남만의 수혜가 아니다. 울산은 기존 주력산업의 고도화와 함께 신산업 전환이 큰 과제다. 울산의 기존 기업과 청년 스타트업은 우주·항공·국방 쪽 미래산업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두 도시의 ‘윈-윈’이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해양과 조선, 금융을 묶으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영역이 창출될 것이다. 부산은 조선 제조업의 AI 전환의 수혜를 입을 수 있고, 울산은 해양과 금융의 전주기(full cycle) 영역으로 확장해 나갈 문이 열린다. 나아가 미래에너지, 전력반도체, 양자 등에서 두 도시의 협력으로 지역성장의 새 활로를 열지 말란 법도 없다.

경남 창원도 같은 맥락에서 기회의 창이 더욱 넓어진다. 기계산업이 AI 로봇산업으로 재탄생하면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울산과 창원은 피지컬 AI의 ‘수급(需給) 공동체’로 거듭날 것이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혁신의 두 가지 키워드라고 할 ‘규모화’와 ‘차별화’에서 성공 가능성이 제일 높은 곳은 단연 동남권이다. 부산과 울산, 경남이 주체적으로 나서면 동남권이 바뀌고, 동남권이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

UNIST는 국가의 4대 과학기술원 중 하나로 안주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지역성장의 기존 판을 갈아엎는 전혀 다른 과학기술원을 그리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안한 4극 3특 ‘지역자율 R&D’를 키워 부산, 울산, 경남을 하나로 묶는, 과거에 없던 동남권 R&D모델을 제시할 계획이다. 국내외 포닥을 대거 뽑아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단(innoCORE) 사업은 지역성장을 위한 인재 수혈의 창구가 될 것이다. UNIST는 지역성장을 산업정책의 전면으로 끌어올린 산업통상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제조AI 전환(MAX 사업)의 동남권 플랫폼도 준비하고 있다. 딥테크 창업을 위해 과학기술원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중기벤처부에는 ‘동남권 딥테크 창업기지’로 화답하고 있다. 없던 길을 개척하는 인재 양성과 연구실과 공장을 잇는 연구로 지역 성장을 선도하는 UNIST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최고(unique and best)’이고 싶다.

부산과 울산, 경남 지방자치단체에 호소한다. 세 지자체가 함께 손잡고 과학기술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 달라고. 우리가 미래 세대의 꿈을 키울 지역 성장의 새로운 공식을 쓰지 못하면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역사는 미래와 청년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직무유기요, 배임”이라고 기록할 것이다.

안현실 UNIST 연구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