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철의 별의별 세상이야기(14)]칼날 끝에 묻은 꿀

2026-02-25     경상일보

산업수도 울산은 요즘 강대국간 지정학적 갈등과 석유화학산업의 침체, 불안한 환율 환경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구조적 문제로 산업 경쟁력이 악화되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 울산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3만50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사실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며,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가장이다.

울산의 많은 중소업체는 인력난 속에서 외국인 노동자들 덕분에 버텨내고 있다. 이들의 노동은 조선소를 비롯한 주요 산업 현장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체류 기간이 끝난 뒤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는 이들이 있다. 더 많은 돈을 벌어 가족의 삶을 바꾸고 싶은 절박함 때문이다.

문제는 그 순간부터 제도의 보호 밖, 인권 사각지대로 밀려난다는 사실이다.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해도, 산업재해를 당해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신고를 하는 순간 삶의 터전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들을 단속하고 처벌하지만 그 이면에는 가난과 책임 그리고 가족을 향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도 비슷한 시절이 있었다. 수 백 미터지하 독일 탄광에서, 중동의 뜨거운 사막 건설현장에서 흘린 선배들의 땀과 눈물이 오늘의 대한민국 밑거름이 되었다. 타국에서 외롭고 서러웠던 그 시절을 기억한다면 지금 우리 곁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과거 필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안고 외국인 노동자 공동체 구성을 돕는 일에 참여한 적이 있다. 각 나라별로 서로 의지하고 정보를 나누는 모임을 만들도록 돕는 일이었다. 그 중 네팔 공동체를 이끌었던 한 청년은 고국으로 돌아가 학교를 세우는 일에 힘쓰고 있으며, 이제는 정치 참여까지 꿈꾸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삶을 지켜낸 작은 도움이 한 나라의 미래를 바꾸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를 통해 알 수가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경제 규모만이 아니라 이방인을 품는 마음의 크기에서도 선진국이 되어야 할 시점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일, 제도적 보호장치를 촘촘히 마련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는 일. 이러한 것들을 챙기고 살펴가는 것 역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가치라 생각된다. 우리가 그들의 손을 잡아 줄 때, 결국 우리 사회와 나라의 품격도 함께 높아진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선택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병철 울산장애인재활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