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독성가스 누출 중독사고, 막을 수 없었나

2026-02-25     경상일보

2026년 2월6일 새벽 0시4분, 울산의 한 화학공장에서 30대 노동자가 숨졌다. 폭발도 화재도 없었다. 배관에서 새어 나온 클로로폼을 흡입한 것이 전부였다. 그는 설비 상태를 확인하던 중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 기록에는 짧게 남는다. ‘점검 중 사망.’ 그러나 이 한 줄은 사고의 핵심을 비켜 간다.

‘점검 중 사망’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유해가스가 존재하는 현장에 노동자를 혼자 보냈다는 뜻이다. 점검을 하나의 고위험 작업이 아니라 ‘잠깐의 확인’으로 취급한 결과다. 그러나 화학공정에서 점검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공정은 멈추지 않고 살아 있으며, 설비와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 유해물질에 직접 노출될 가능성이 가장 높아진다. 이번 사고의 원인 물질로 지목된 클로로폼은 과거에는 마취제로 사용됐지만, 현재는 산업안전보건법상 관리대상 유해물질이다. 무색·투명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지만, 바로 그 특성 때문에 더 위험하다. 냄새를 느꼈다는 것은 이미 노출이 시작됐다는 뜻이고, 일정 농도에 이르면 경고보다 먼저 중추신경계가 마비돼 판단력이 급격히 저하된다. 위험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숙련이나 경험은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 살고 죽는 갈림길은 개인의 주의가 아니라, 현장이 어떤 시스템으로 준비돼 있었는가에 달려 있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과거의 경고 신호다. 해당 공장은 이전에도 유해물질 누출 사고를 겪은 바 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설비 관리와 공정 통제의 취약성은 이미 드러났다. 구조적 개선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번 중독사는 우연이 아니라 예고된 결과에 가깝다. 실제로 유기용제 누출 확인 중 단독 점검 사망, 저장탱크·폐수처리시설 인근 유해가스 노출 사고, 가스 감지기 미설치 상태에서 접근했다가 숨진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사고 형태는 달라도 공통점은 분명하다. 단독 접근, 보호구 미착용, 점검을 작업으로 보지 않는 관리 관행이다.

법은 이미 이 위험을 알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2조는 관리대상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경우, 가스나 증기의 발산원을 밀폐하거나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의 의미는 단순하다. 유해가스가 나올 수 있는 환경에서 사람이 먼저 노출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출을 전제로 한 설비, 환기, 차단, 접근 통제, 보호구 착용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기본 조건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잠깐 확인만 하러 갔다”는 말이 반복된다. 화학사고는 바로 이 ‘잠깐’을 놓치지 않는다.

선진국은 유기용제 누출 사고를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 실패로 본다. 미국에서는 유기용제 취급 설비 점검을 원칙적으로 2인 이상 작업으로 제한하고, 가스 감지기 작동 확인 없이는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단독 작업 중 중독사가 발생하면 개인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관리 책임을 중대 위반으로 판단한다. 유럽 국가들 역시 배관·펌프·저지대에 상시 가스 감지와 자동 환기·차단 시스템을 의무화하고, 점검을 작업허가제 대상 작업으로 관리한다. 보호구 미착용 상태에서 접근을 허용한 관리자는 형사 책임을 진다. 영국은 아예 ‘점검’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점검은 작업이며, 작업에는 반드시 위험성평가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막을 수 없었나? 답은 분명하다. 막을 수 있었다. 유해화학물질 공정 점검은 무조건 2인 1조로 수행해야 한다. 야간 점검은 최소화하고, 불가피할 경우 인원과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배관·펌프 등에는 가스 감지와 경보, 자동 환기와 차단 장치가 연동돼야 한다. 무엇보다 점검은 명백한 작업이며, 작업허가와 보호구 착용은 예외 없는 원칙으로 현장에 고정돼야 한다. 독성가스 누출 중독사고는 불가항력이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용기나 경험이 아니라 함께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보이지 않는 가스 앞에 단독 작업을 허용하는 순간, 그 현장은 이미 사고를 선택한 것이다.

정안태 울산안전(주) 대표이사 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