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9장 / 광명세상을 꿈꾸는 백성들 (134)

2026-02-25     차형석 기자

“알았어요. 잘 해 봅시다.”

모든 사람들이 천동을 인정하고 있었다.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천동은 자연스럽게 내원마을의 촌장감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 그렇지만 천동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촌장은 마을의 최고 연장자가 형식적으로 맡고, 실질적인 마을 일은 9인의 대표들이 의논하고 전체회의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다음 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땔감을 준비하고, 움막을 보수하는가 하면, 바닥의 냉기를 막기 위해서 억새를 넉넉하게 바닥에 깔기도 했다. 약초꾼 노릇을 했던 사람을 길잡이로 삼아서 일부는 주왕산에서 약초를 캤다.

천동은 마을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울산으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비학산 자락을 걷는데 그의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덮쳐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굴렸지만 팔에 자상을 입었다. 천동은 상처를 살필 겨를도 없이 연속적으로 생면부지의 남자들에게 무지막지한 공격을 당했다. 이미 대여섯 군데에 상처가 났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는 치명적인 급소를 피한 곳이었다. 저들이 자신을 죽일 생각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오십여 보 뒤에 있던 김 초시가 손짓을 하자 공격하던 자들이 뒤로 물러났다. 목발을 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기세가 등등한 그는 입가에 조소를 흘리며 한기 서린 말을 천동에게 쏘아 보냈다.

“못 본 사이에 신수가 훤해졌구나. 네놈이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사라지는 바람에 소작을 부칠 놈들이 없어서 농사를 제대로 지을지 걱정이다. 상놈들이 사라지니 마을이 조용해서 좋기는 하다만, 네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이냐?”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인다고 해도 원하는 답은 얻지 못할 것이네.”

“저, 천하에 버르장머리 없는 놈. 내 나이가 네 아비뻘인데 어디다가 함부로 말을 놓느냐? 그것도 백정의 자식 주제에.”

“내가 훈련원 봉사의 관직을 가졌던 몸인데 어디서 겨우 향리에서 행세하는 초시 따위가 내게 훈계를 하는 것이냐?”

“저놈의 아가리를 찢어 버리든지 해야지….”

천동은 제대로 된 발검의 자세를 취하며 김 초시와 일행에게 소리쳤다.

“이제는 절대로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놈은 나서라.”

천동을 기습했던 자들은 그의 완벽한 자세에 주춤하더니 쉽사리 공격하지 못했다. 천동의 검술실력을 눈치 챈 놈이 있었던 것이다.

“뭣들 하느냐? 어서 공격하라.”

김 초시는 큰 소리로 재차 공격을 명했으나,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낀 자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김 초시를 버려두고 도망쳤다. 김 초시의 곁에는 그의 가마를 들던 자들만 남게 되었다. 그들 역시 표정은 굳어있었으나 가마를 버리고 도망치지는 않았다. 천동은 천천히 김 초시에게 다가가서 그의 나머지 다리를 잘라버렸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