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솔베이회의와 다보스포럼

2026-02-26     차형석 기자
1911년, 벨기에 브뤼셀의 한 회의실에 인류의 미래를 바꿀 질문들이 모였다. 아인슈타인과 퀴리, 플랑크가 참석한 ‘솔베이회의’다.

이 회의는 대중에게 공개되는 전시도, 화려한 이벤트도 아니었다. 소수의 석학들이 당시 물리학의 근본을 뒤흔들던 질문, “자연은 연속적인가, 불연속적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했다. 이 작은 회의에서 논의된 양자이론은 이후 100년간 과학기술과 산업, 나아가 인류의 생활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솔베이회의가 특별한 이유는 규모나 형식이 아니라 ‘질문’에 있었다. 이 회의는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이후 수십 년간 과학자들이 공유해야 할 공통의 문제의식을 정리했다. 그 질문들은 학문과 산업의 방향타가 되었고, 브뤼셀이라는 도시는 그 결정적 장면의 배경으로 역사에 남았다.

비슷한 장면은 매년 겨울 스위스의 작은 산악도시 다보스에서 펼쳐진다. 세계경제포럼(WEF), 이른바 다보스포럼이다.

이곳에서는 신기술을 전시하거나 대규모 계약을 공개적으로 체결하지도 않는다. 대신 각국 정상과 글로벌 기업 CEO, 석학, 국제기구 수장들이 모여 ‘지금 세계가 가장 먼저 논의해야 할 의제는 무엇인가’를 토론한다. 다보스의 힘은 가시적인 성과보다, 전 세계 투자와 정책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의제 설정에 있다.

다보스포럼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진 기후변화, 디지털 전환, 글로벌 공급망, ESG는 이후 국제사회의 공통 언어가 되었다. 다보스 스스로 해답을 내리기보다 세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을 던지는 장소로 기능해왔고, 그 결과 다보스라는 도시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솔베이회의와 다보스포럼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들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미래가 설계되는 컨벤션이라는 점이다. 컨벤션은 기술을 나열하거나 성과를 홍보하는 공간을 넘어, 지식이 정리되고 이해관계자의 관점이 조정되며 다음 행동이 암묵적으로 합의되는 장이다. 이 과정에서 도시는 단순한 개최지가 아니라 논의의 방향과 성격을 규정하는 주체가 된다.

그렇다면 울산은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결정적 순간들을 만들어온 도시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산업은 물론, 인공지능(AI)과 에너지 분야의 대규모 투자와 기술 선택, 생산 방식의 전환이 울산에서 현실이 되었다. 울산은 늘 ‘만드는 도시’이자 ‘실행하는 도시’였다. 그러나 이제 울산이 마주한 과제는 무엇을 더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전환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탄소중립, AI 기반 생산체계, 에너지 전환과 미래 모빌리티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 전체와 도시, 국가 차원의 전략과 합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이 전환의 시기에는 이해관계자들이 같은 질문을 공유하고 공통의 방향을 설정하는 장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 지점에서 울산형 컨벤션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울산은 다보스처럼 세계를 대표하는 포럼을 단숨에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산업 전환의 실증 현장을 가장 밀도 높게 보유한 도시로서, 가장 현실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컨벤션도시가 될 수 있다. 수소와 분산에너지, 친환경 선박, 산업 AI, 미래 모빌리티는 울산에서 논의될 때 비로소 구체성을 갖는다.

유에코(UECO)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핵심 공간이다. 전시를 넘어 정책 포럼과 글로벌 기업 라운드테이블, 산업 전략 논의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유에코는 단순한 시설을 넘어 산업 전환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 기술을 ‘보여주는 공간’과 방향을 ‘결정하는 공간’이 결합될 때, 울산은 결과를 설명하는 도시에서 기준을 제시하는 도시로 확장된다. 미래는 우연히 오지 않는다. 미래는 언제나 질문이 먼저 던져지는 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질문이 반복되고 축적되는 도시는 결국 세계의 방향에 이름을 남긴다. 울산만의 장점을 살린 산업특화 컨벤션도시를 지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원도 울산문화관광재단 관광마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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