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9장 / 광명세상을 꿈꾸는 백성들 (135)
순식간에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땅바닥에 나뒹군 김 초시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천동은 그런 그를 연민이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며 나직이 일갈했다.
“두 번 다시 나를 해치려 들지 마라. 그땐 네놈의 목숨을 취할 것이다. 죽기 싫으면 썩 꺼져라. 나와 내 동무들의 농지를 죄다 강탈한 네 놈의 악행을 생각한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오체분시를 해도 분이 풀리지 않겠지만, 이번만큼은 네 다리 하나를 자른 것으로 대신하고 목숨만은 살려주는 것이니 남은 생은 개과천선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말을 마친 천동은 김 초시에게 미리 준비해 간 오징어 뼛가루를 던져주고 사라졌다. 김 초시는 다리가 잘린 아픔으로 비명을 지르다가 눈물을 흘리며 천동을 노려보았고, 천동은 그런 김 초시를 비웃으며 쳐다보다가 돌아섰다. 천동은 비학산 중턱에 숨겨두었던 세간을 챙겨서 다시 주왕산으로 돌아갔다. 그가 울산에 가려던 계획을 수정한 것은 김 초시를 울산으로 가는 도중에 만났고, 하고자 했던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간 김 초시는 분하고 원통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제대로 검을 쓸 줄 아는 자들로 호위무사를 뽑아서 다음에 천동을 다시 만난다면 녀석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으리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잘려나간 다리를 보면서 김 초시는 피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부터 약초꾼들을 불러 모아서 천동과 마을 사람들이 정착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원마을로 숨어들어간 천동과 마을 사람들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보부상 서신 16호
1599년 1월, 길고도 길었던 왜란이 종결되면서 강화협상에 의해서 왜국으로 끌려갔던 일부 포로들이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수만 명의 포로들은 이미 제3국으로 팔려가서 끝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왜군들의 포로가 되어 끌려간 조선의 도공들 중 상당수는 조선쇄신사(포로송환교섭사절)들과의 면담 시 조선에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귀국제의를 거절하였다. 조선에서 천대받았던 도공들을 왜국은 사무라이 신분으로 격상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사무라이 신분은 조선으로 치면 사대부에 해당하는 지배계급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도공들은 강제로 귀국시키면 자살하겠다고 강경하게 말해서, 쇄신사들은 그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조선에서는 난중에 잠시나마 사람으로 대접을 받았던 천민들이 양반들로부터 다시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취급을 당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7년 전쟁의 후유증을 치료하는 데 몰두해야 할 조정은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의 세자위를 폐위하려는 주상의 변덕으로 인해 다시 붕당이 시작되었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