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小공원 산책하기](33) 원동력은 마로니에-백양공원

2026-02-26     권지혜 기자

흰 돌에 새긴 이름 꺼멓게 번져있다
세로로 찍힌 점점 두 개의 선 이뤘다
긴 세월 머금고 서서 오랫동안 음미했다

몇 번의 솔질이면 지울 수 있지만은
흠이라 생각 않고 역사로 생각한다
훤칠한 마로니에도 그렇다고 끄덕끄덕

 

흰 돌에 공원 이름이 까맣게 새겨져 있다. 백양의 백이 흰 백이어서인지 검은 돌이 아니고 흰 돌이다. 백양공원은 산림청 녹색사업단의 복권기금(녹색자금) 지원으로 정비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돌에 검은 이물질들이 생겨 있다. 몇 번 만 솔질을 하면 없어질 것 같지만 거슬리는 사람들이 없는 듯 그대로 두었다. 새마을부녀회에서 쾌적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노력한다니 곧 하얗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인근 백양초등학교 학생들이 공원에서 놀고 있다. 파고라도 옆에 있으니 이런 비쯤은 괜찮을 것 같긴 하다.

여기서도 디딤돌 사이에 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것의 양쪽에는 바닥 타일이 깔려있다. 디딤돌 몇 개를 밟고 가면 마로니에가 있다. 마로니에 나무마다 벤치가 놓여 있다. 거기에 앉은 사람들이 마로니에와 대화를 나누라는 취지로 여겨진다. 각각의 나무마다 벤치 하나,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배치이다.

어떤 기분일지를 느껴보기 위해 벤치에 앉아 마로니에를 바라본다. 서울 혜화동 대학로와 이화동 사이에 위치한 마로니에공원을 만나면 어떤 기분일지도 잠시 상상해 본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멍석을 깔아 주었는데, 나에게서 나온 말은 겨우 ‘여기서 너를 만나 반갑다.’였다.

나의 감정 전달이 많이 부족했음을 느끼며 마로니에 왼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성안동 부녀회에서 심어놓은 아기자기한 꽃밭임을 팻말이 말해주고 있었다. 얼마 전에 심어놓아 아직 여리다. 키 큰 마로니에 옆에 한 뼘 정도의 식물을 보니 모두 제각각 타고난 게 다름을 생각하게 된다. 꽃들이 빗방울을 머금고 재채기를 하는 듯 흔들린다. 비슷한 간격으로 심어진 꽃들이 모두 잘 자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 같다.

여기에서 또 처음 보는 나무가 있다. 바로 칠엽수다. 잎이 일곱 개로 갈라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칠엽수 옆에는 단풍나무가 쑥쑥 자란다. 잎들이 빈틈없이 서로 등을 맞대고 포개져 있다. 잎이 가벼우니 다른 잎들에게 큰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아래에 있던 잎들이 한 번씩 고개를 내밀어 세상 볼 기회를 얻는다.

운동기구와 파고라가 있는 곳 앞으로 쫙 깔린 타일이 돋보인다. 넓은 터에 붉은 색과 검은 톤의 색 타일이 섞여 있다. 얼핏 보면 바닥이 꽃보다 화려하다. 비를 머금어서인지 타일 색이 더 살아난다.

시원스럽게 형성된 공간에서 마음이 넉넉해진다. 약간의 비는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한 남성이 운동을 하고 있다. 파고라에서 몇 명의 아이들이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공원의 얼굴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가 온다고 해서 방해를 받는 곳이 아님을.

길쭉한 마로니에 잎이 빗물을 바로 떨어뜨린다. 빗방울들이 미끄럼을 타듯 쭈르륵 흘러내린다. 여기에서 귀하게 만난 마로니에는 그냥 지나치려고 했던 백양공원에 관심을 갖게 했고 공원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벤치의 빗물을 휴지로 닦은 후 다시 앉아 마로니에를 바라본다. 천주교 신자들이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것처럼 나 또한 이곳을 지나치려고 했던 점을 고하며 용서를 구한다.

글·사진=박서정 수필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