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피지컬 AI와 산업수도 울산의 비전
피지컬 AI(Physical AI)는 말 그대로 ‘몸을 가진 인공지능’이다. 기존의 생성형 AI가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글과 그림, 답변을 만들어냈다면, 피지컬 AI는 센서와 모터, 제어기, 배터리, 그리퍼 같은 물리적 장치를 통해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직접 움직여 행동한다. 즉, 보고(인지), 생각하고(판단), 움직이는(행동) AI다. IBM은 이를 ‘물리 세계에서 작동하며 인간 및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AI 시스템’으로 정의한다. 최근 이 개념이 급부상한 이유는 로봇이 더 이상 정해진 동작만 반복하는 자동화 장비가 아니라, 대규모 AI 모델과 시뮬레이션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작업을 학습하고 다른 작업으로 능력을 전이하는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엔비디아가 휴머노이드용 기반 모델과 로봇 개발 전 주기를 아우르는 피지컬 AI 플랫폼을 잇달아 공개하는 것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피지컬 AI의 적용 분야는 이미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용접, 조립, 물류 이송, 검사 같은 반복 공정은 물론 숙련이 필요한 공정까지 사람과 로봇의 협업 방식이 재편되고 있다. 조선업 현장에서는 작업자가 태블릿으로 조건을 입력하면 로봇이 이를 바탕으로 연속 용접을 수행하는 ‘데이터 용접’이 확대되고 있다. 서비스 분야에서도 병원 물류, 요양·돌봄 보조, 건물 관리, 고소·협소·유해 환경에서의 위험작업 대체로 로봇 활용이 늘고 있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은 공장 내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범용 노동’의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피지컬 AI의 가치는 단순한 생산성 향상에 그치지 않는다. 고령화와 인력난이 심화되는 제조 현장에서 인력 공백을 보완할 수 있고, 위험 작업을 로봇이 대신 수행함으로써 산업재해와 중대사고 위험을 구조적으로 낮출 수 있다. 또한 로봇이 만들어내는 작업 데이터는 공정 개선과 품질 향상의 핵심 자산이 되어, 설비·안전·납기를 함께 끌어올리는 데이터 기반 경영으로 이어진다.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자동화와 로봇화는 생산의 탄력성을 높이는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동계의 우려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의 구성과 노동 교섭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반복적이고 위험한 일자리는 줄어드는 대신, 직무 전환과 숙련 재편 과정에서 임금 격차와 고용 불안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도입 속도가 아니라 전환의 공정성이다. 재교육과 직무 재설계, 안전 기준 강화, 성과 공유 장치가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기술 혁신은 사회적 갈등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미래를 바라볼 때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로봇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는 피지컬 AI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산업의 기본 체질 위에서 지능화와 범용화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임을 의미한다. 산업용 로봇, 휴머노이드, 자율이동로봇, 드론과 특수로봇이 확산되면서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AI 기반 모델 경쟁이 산업 판도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울산의 선택은 분명하다. 조선·자동차·석유화학이라는 초대형 제조 생태계를 가진 울산은 피지컬 AI를 제조 AI 전환의 핵심 축으로 삼아야 한다. 스마트 조선소와 공장 중심의 실증 테스트베드 구축, 방폭·화재·유해 환경에 특화된 안전 로봇 육성, 로봇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지역 공급망 형성, 노사정이 참여하는 로봇 전환 협약, 전문 인력 양성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피지컬 AI는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산업을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도구다. 울산이 이를 두려움이 아닌 전략으로 받아들일 때, 산업수도는 AI 기반 제조 혁신 도시로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길상 울산대학교 경영경제융합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