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운의 울산인물 탐구(8)]울산을 사랑한 심완구 전 시장

2026-03-03     경상일보

울산은 1962년 초대 홍승순(洪承洵) 시장 이래 현 김두겸 시장까지 많은 시장이 거쳐 갔다. 이 중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후 선거로 선출된 시장만도 5명이나 된다.

이들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울산시민은 임명직 시장으로는 9대 이재덕(李載德) 시장 그리고 선출직 시장으로는 심완구 시장을 가장 존경하는 시장으로 손꼽는 것 같다.

충남 청양 출신으로 1978년 울산에 왔던 이 시장은 울산시가 공업단지 조성을 하면서도 태화강 개발 계획이 없는 것을 알고 먼저 태화강 둔치 매입을 서둘렀다. 그러자 당시 울산시 공무원 대부분이 이 사업은 강변에 땅을 가진 300여명 지주가 무리한 보상금을 요구해 힘들다면서 반대했다. 사업이 시작되자 지주들이 보상 문제를 두고 매일 시장실로 찾아와 말썽을 부렸지만 이 시장은 이들을 설득해 재임 중 이 일을 성사시켰다. 후임 시장이 어려움 없이 태화강을 개발해 국가정원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시장의 이런 안목 때문이었다.

심 시장을 두고 관운과 인복, 부인복이 있었다고 말들을 한다. 심 시장은 시장 전 국회의원을 두 번이나 지냈다. 시장 재임 시에는 광역시 승격과 신항만 건설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많은 일을 했다. 그가 관운이 좋다는 것은 남들이 한 번도 힘든 국회의원과 시장을 두 번씩이나 연임했기 때문에 듣는 것 같다. 인복은 그의 깨끗한 인사에서 나타난다. 그가 선거를 치르는 동안 주위에서 도운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선거 후 논공행상으로 이들을 요직에 앉히는 일이 없었다. 이 때문에 선거에 도움을 준 일부 인사가 앞으로는 심 시장 선거를 절대로 돕지 않겠다고 비난했지만 다음 선거 때면 이들이 다시 모여 심 시장을 도왔다.

심 시장은 생전에 3번 결혼했다. 첫째 부인은 심 시장이 서울에서 야당으로 낭인생활을 할 때 불고깃집을 운영해 그의 정치활동을 도왔다. 두 번째 부인은 심 시장이 초대 민선시장 선거에서 공천조차 힘들었을 때 당선될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 부인의 오빠 홍인길은 시장 선거 당시 김영삼 대통령 총무수석으로 있으면서 직간접으로 심 시장을 도왔다. 세 번째 부인은 심 시장의 옥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그 자신이 ‘식물인간’이 되는 바람에 심 시장이 간호하느라고 오랫동안 힘든 생활을 했다.

심 시장이 지금까지 울산시민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의 업적보다 소탈한 성격에 있는 것 같다. 퇴임 후 정자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해 놓고 서울에서 부인을 간호하면서도 지인의 경조사가 있을 때면 반드시 울산에 와 자고 올라갔던 이 아파트에는 현재 그의 아들이 살고 있다.

시장 퇴임시 폐암을 앓아 세계적인 폐암 전문의 이진수 박사와 가까워졌던 그는 울산에 암 환자가 생기면 이 박사로부터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의 서거 5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심 시장 평전>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지역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