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9장 / 광명세상을 꿈꾸는 백성들 (136)
세자인 광해군을 등에 업고 조정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북인이 세자책봉문제로 대북파와 소북파로 갈라졌다. 대북파는 광해군을 세자로 지지하였고, 소북파는 정통성을 내세워 인목황후 소생인 영창대군을 세자로 지지하였다. 무고한 양민을 여러 명 살해했다는 이유로 순빈김씨의 소생이며 서열상 여섯째 왕자인 순화군 이보에 대한 파직 상소가 연이어 조정에 올라오고 있으나, 순화군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주상은 그를 감싸고 처벌하지 않고 있다.
내원마을에서는 1599년 2월1일(음력) 제2차 마을회의가 열렸다. 앞으로의 일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자리였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꽤나 너른 분지 형태를 하고 있는 곳이기에 우선 마을 사람들이 거주할 집은 동쪽 산기슭에 토굴 형태로 지어서 일부만 외부로 돌출되게 짓기로 했다. 이런 집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겨울철 난방에 유리하다. 또한 집들을 최대한 가까이 배치하여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방어하기가 쉽도록 하였다. 그런 다음 집 주위로 밤나무나 사과나무 등 유실수를 빼곡히 심어서 외부에서는 집이 안 보이도록 하였다.
분지는 개간하여 공동 경작지로 하고, 소출한 곡식들은 수고한 만큼 공평하게 나누기로 하였다. 마을의 자급자족을 위해서 산 아래의 평지 부근에 저수지를 만들고 그곳에 각종 물고기를 풀어 놓았다가 필요 시 잡아서 식량이 부족할 때 대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은 두 해 정도 계속해서 조사를 하여 월별로 채취할 수 있는 나물이나 약재 등을 지역별로 분류하여 세세히 기록하기로 했다.
마을의 공동방어계획도 세웠다. 주왕산 내원마을은 협곡이나 높은 고개를 넘어야 갈 수 있는 곳이기에 대규모의 군마나 인원을 동원한 기습공격이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마지막 폭포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와 세 군데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들어오는 곳의 맨 꼭대기에 토굴을 파서 집처럼 거주하면서 고개를 넘어오는 외부의 적들을 감시하거나 공격할 수 있게 만들고, 그곳에 칼과 활 마흔 개, 화살 천 개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번을 서는 순서와 연락방법도 숙지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마을 사람들은 잘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그 일에 대해선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제일 바쁜 사람은 당연히 천동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만든 서당에서 글공부를 시키는 훈장도 그의 몫이었고, 외부의 적이 쳐들어왔을 때를 대비해 훈련을 시키는 훈련교관도 병서를 읽고 검술을 익힌 그가 담당하였다. 몸이 서너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내원마을로 들어온 이후의 천동은 너무 바빴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