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3월의 듣·말·읽·쓰
추억의 교과서 ‘말·듣·쓰’를 들어봤나요? 옛날 국어 교과서의 이름이었던 말하기·듣기·쓰기는 이후 듣·말·쓰로 바뀌고, 지금은 국어와 국어 활동 속에서 듣기·말하기·읽기·쓰기를 함께 다룹니다. 아기가 뱃속에서 고운 말을 듣고, 서툰 소리로 부모를 부르고, 글자를 읽으며 의미를 익히고, 마침내 마음을 글로 적어내기까지. 언어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3월의 교실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새 학기를 맞으며 환상의 궁합을 기대하지만, 노력 없는 만남으로 깊은 관계가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이 순서를 처음처럼 다시 밟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먼저, 듣기. 새 학기 첫날, 아이들은 묻습니다. “작년에는 몇 반이었어?” “선생님은 뭘 좋아하세요?” 저 또한 묻습니다. “방학은 어떻게 보냈어?” “요즘 관심사는 뭐야?” 서로의 대답을 들으며 낯선 교실에 조금씩 다가섭니다. 아이들은 이 교실이 안전한 공간인지 살피고 교사는 이번 아이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을지를 가늠합니다. 듣기는 서로에게 마음 놓을 자리를 내어주는 시간입니다.
두 번째, 말하기. 조심스럽던 교실에 말이 오가기 시작합니다. 발표를 망설이던 아이가 용기 내어 손을 들고, 교사는 아직 입에 붙지 않는 이름을 한 번 더 또박또박 불러봅니다. 말은 관계의 모양을 잡습니다. 막연했던 기대와 긴장이 문장으로 나오며 조금씩 정돈됩니다. 비록 말은 공기처럼 사라지지만, 교실의 온도를 천천히 올립니다.
세 번째, 읽기. 글을 읽듯 우리는 서로를 읽습니다. 자꾸만 다른 반에 있는 친구를 찾는 아이에게서 작은 불안을 읽듯 말이죠. 아이들 역시 교사를 읽습니다. 오늘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진심을 해석합니다. 용기 내어 친구에게 다가가는 몸짓과 수업에 집중하는 눈빛과 같은 비언어를 탐색하며 서로를 천천히 배워갑니다. 매일의 장면들이 포개지며 이해도 한 층씩 쌓여갑니다.
마지막으로, 쓰기.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함께 기록을 남깁니다. 맨 처음 교과서에 이름을 쓰고 함께 학급 규칙을 정하며 마침내 서로에게 응원의 문장을 건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 속에는 ‘올해는 더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쓰기는 가장 구체적인 다짐입니다. 말보다 정돈되어 있고, 마음보다 또렷합니다. 그리고 기록은 시간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나, 어떻게 하나의 반이 되어가는지.
문득 이런 문장이 떠오릅니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장승리의 시집 <무표정>에 실린 구절입니다. 정확하다는 말은 어쩌면, 오해 없이 닿는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입체적이고 복잡한 존재지만, 아이들은 정확하게 이해받고 싶고 교사는 정확하게 마음을 건네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듣고, 천천히 말하고, 차분히 읽고, 또박또박 써야 합니다. 서로 왜곡하거나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 아직 마침표는 멀었지만, 첫 줄은 분명히 시작되었습니다.
배상아 울산 복산초등학교 교사